쇼코쿠지는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3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고코마쓰(後小松) 천황의 칙명을 받아 건설한 임제종(臨濟宗·불교의 한 종파) 사찰이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된 해에 만들어졌으며, ‘오닌의 난(澳仁の亂·1467~1477)’ 때 모든 건물이 불타버린 이후 수차례의 개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사찰의 중앙에 있는 법당 건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아들인 히데요리(豊臣秀賴)가 1605년 건립한 것인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 건물로 중요문화재에 지정되어있다. 쇼코쿠지 법당 뒤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지쇼인이 있다. 원래 이 건물의 이름은 다이토쿠인(大德院)이었는데, 1490년에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를 기념하는 영당(影堂)으로 조성되면서 그의 법호를 따서 지쇼인이라 했다고 한다.
이 지쇼인은 조선통신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쓰시마에 설치된 역소(役所)에 교토 오산(京都五山)의 승려가 2년 교대로 파견되었는데, 지쇼인에서도 5명의 승려가 파견되었고 그중 벳슈 소엔(別宗祖緣) 스님이 통신사 사절단과 나눈 시문과 자료가 남아있다. 1711년 통신사 일행이 당시 쇼코쿠지의 주지였던 벳슈에게 준 100여 점에 가까운 유묵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벳슈는 접반승의 자격으로 통신사와 함께 도쿄를 왕래했고, 통신사와 함께하는 수개월 동안 시문을 주고받았다가 이를 모아서 『한객사장(韓客詞章)』이란 제목의 4축으로 된 두루마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한객’이란 바로 조선의 통신사를 지칭하는 것이다. 벳슈에게 시문을 준 사람은 정사 조태억(趙泰億), 부사 임수간(任守幹), 종사관 이방언(李邦彦)을 비롯하여 제술관 이현(李礥), 서기 홍순연(洪舜衍), 엄한중(嚴漢重), 남성중(南聖重)과 같은 주요 문사를 망라하고 있다.
지쇼인의 방 안에는 병풍으로 된 또 다른 자료가 있다. 그것은 통신사 일행의 글씨와 그림을 모아서 표구한 병풍이다. 부채용 종이를 사용한 것이 많고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것도 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호 앞에 ‘조선(朝鮮)’이라 기록해 일본을 방문한 조선인의 작품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통신사가 남긴 글에는 한글도 있었다. 한글로 시조를 쓴 다음 이에 해당하는 한자를 병기한 것이 두 점 있는데, ‘농와’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쓴 것이다. 한글을 묻는 일본인에게 한자로 뜻풀이까지 해서 써준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