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젠지가 있는 도모노우라(鞆の浦)는 조선통신사가 왕래할 때에 반드시 기항했던 항구이다. 세토내해의 서쪽 끝인 시모노세키까지 직선 거리로 220㎞이고, 동쪽 끝인 오사카까지는 210㎞로, 도모노우라는 세토내해의 한복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세토내해의 항해는 기본적으로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했는데, 밀물 때에 도모노우라로 들어왔다가 썰물을 이용해서 빠져나갔다.
이 조수의 흐름을 탄 항해는 하루 70~80㎞가 한도였다고 하는데, 바람사정이 좋으면 그 이상을 항해할 수도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세토내해를 항해할 때는 보통 8곳에 기항을 했는데, 도모노우라항은 세토내해에서 가장 경치가 좋을 뿐만 아니라 배가 출입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춘 훌륭한 항구였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출입하기가 좋았고, 항내는 파도가 잔잔했고 수심도 깊었으며, 대형선박이 착안(着岸)할 수 있도록 계단 모양의 선착장도 있었다.
도모노우라의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많은 섬이 있고, 그 섬들이 멋진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1617년 통신사 종사관 이경직(李景稷)은 『부상록(扶桑錄)』에 “카미노세키(시모노세키)에서 동쪽으로는 섬들과 포구의 경치가 훌륭한 곳이 많고, 도모노우라에 도착하면 그 경치가 말할 수 없이 절경이었다”고 기록했다.
조선통신사의 숙소였던 후쿠젠지는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의 절벽 위에 서 있다. 10세기 중반 경 세워졌던 관음당(觀音堂)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본당인 관음당 건물은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으로, 1690년에 번주의 명령에 의해 통신사의 영빈관(迎賓館·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따로 잘 지은 큰 집)으로 세워졌다. 관음당에서 바다 쪽으로 사방 15m 정도의 정원이 있었고, 관음당의 동남쪽으로 창문을 냈는데, 동쪽 창으로는 센스이지마(仙醉島), 벤텐지마(弁天島) 등의 작은 섬들이 떠있고, 남쪽창으로는 시코쿠(四國)의 산들이 보이는 특별한 경치다. 후쿠젠지에서 보는 이러한 경치의 아름다움은 통신사의 거의 모든 기록에 담겨있다.
1711년 통신사의 삼사와 종사관 등 8명은 에도로 가는 길에 도모노우라에 도착하여 후쿠젠지의 영빈관에 모였다. 그리고 영빈관에서 보이는 도모노우라의 풍경을 “전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소문과 다름없는 훌륭한 풍경이다”라고 절찬했다. 그들은 모두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어디가 가장 경치가 좋은가 생각해보니 도모노우라가 으뜸임에 틀림없다. 16개의 눈이 보고 있으므로 틀림없다”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그러자 종사관 이방언(李邦彦)이 붓을 잡고, 이 멋진 경치를 칭송하는 말을 먹자국이 선명하게 써 나갔다. 그것이 ‘일동제일형승(日東第一形勝)’이다. 이 글은 편액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후쿠젠지의 본당(영빈관)에 걸려있다.
1784년 통신사 정사 홍계희(洪啓禧)는 귀국길에 영빈관에서 보이는 멋진 경치에 감탄하여 영빈관에 ‘대조루(對潮樓)’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며 당시 명필이었던 홍경해(洪景海)는 다다미 한 장 크기의 큰 종이를 사찰 주지에게 부탁하여 먹물로 ‘對潮樓’라고 쓰고는 “바다에서도 잘 보이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번주는 홍경해의 말대로 앞바다를 지나가는 배에서도 그 문자를 볼 수 있게 편액을 만들어 걸었고, 지금도 이 편액이 대조루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