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 시내 피폭현장에 조성된 공원이다. 오타(大田)강이 모토야스(元安) 강과 혼가와(本川) 강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중간 지역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공원 안에는 평화기념 자료관을 비롯, 원폭 희생자 위령비, 원폭 어린이상,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등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념하기 위한 30여 개의 위령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초입에는 평화의 시계탑이 세워져 있고 원폭투하 시각인 오전 8시 14분에 맞춰 매일 아침 평화를 염원하는 종이 울린다. 근처에는 평화의 종이 있는데,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누구나 칠 수 있게 돼있다.
매년 8월 6일 원폭기념식이 열리며 2013년도 기념식에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참석했다. 하지만 당시 방문은 항공자위대 731기 탑승과 욱일기(旭日旗)의 공식화 움직임에 이은 행보로, 자신들이 원폭 피해자인 것만 강조하고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언급조차 없어 국내에서 비판이 일기도 했다.
원폭 돔
원자폭탄이 투하된 오테마치(大手町)에 위치한 원형 돔이다. 1915년 당시에는 히로시마현립 산업 장려관으로 사용되었으나, 원폭으로 철골만 앙상하게 남아 ‘원폭 돔’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폭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로, 원폭을 상징하는 건물로 남게 되었다. 건물 보존을 위해 일본 전역의 모금을 통해 공사가 이뤄졌고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1970년 원폭 당시 히로시마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비로 약 2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들 중 2,527명의 사망자 명단만이 비 하단에 새겨져 있다.
최초 이 위령비는 1970년 4월 평화기념 공원 외부에 세워졌다. 당시 히로시마시가 공원 내에 시 자체의 조각물이나 비 건립 계획을 이유로 내부에 건립 못하게 제한을 뒀기 때문으로 이로 인해 ‘민족차별’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이후 공원 내에 히로시마시의 비석이나 조각물이 들어서면서 거류민단이 1975년 다시 한 번 위령비의 내부 이전을 요청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당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이하 약칭 '조총련') 측에서는 1980년대 초 공원 내에 ‘조선인 피폭자 추도비’ 건립허가를 시에 요청했으나 이중 건립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러던 중 1998년 히로시마 시는 거류민단이나 조총련이 아닌 제3의 민간위원회가 이전을 요청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해주게 되었고, 새롭게 구성된 ‘위령비 이설위원회’의 성금과 모금으로 1,500만 엔을 들여 1999년 7월 위령비는 현재의 평화공원 내부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