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을’을 아시나요? 너의 이름은 속에서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시간,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만나게 됩니다. 그들을 이어주던 것은 붉은 끈(무스비)이었는데 이는 월하노인의 붉은 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입니다. 월하노인은 중국 전설 속 인물 중 한 명으로 남녀의 손발을 붉은 실로 묶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붉은 실로 맺어진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일지라도 결국 이어지게 됩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은 하루가 다르게 격화되고 있습니다. 근대에 있었던 역사적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갈등이 경제적 제제로 구체화되면서 교류를 재개한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는 평가도 나올 정도입니다.
조선통신사 또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양국 간의 감정이 가장 나쁘던 시기에 시행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통신사는 처음부터 신의를 교환하기 위해 시행된 일은 아닙니다. 시작은 전쟁을 일으킨 적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적을 정탐한다는 뜻의 탐적사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의를 교류하는 행사인 통신사로 발전되었죠. 통신사는 고립된 섬인 일본을 동아시아 체제에 편입시키고 조선과 중국의 문물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들이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을 조선에 들여오는 등 일본의 도움으로 조선이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과거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다툼이나 공존 같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고 쉽게 끊어지지도 않는 복잡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쩌면 한국과 일본 또한 붉은 실로 엮여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기에 고대부터 많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백제와 힘을 합쳐 신라를 공격했다던가, 한자나 불교 같은 동아시아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된다던가, 고려 시대 말부터 동아시아 일대에서 약탈을 하던 왜구가 세종 시대에 계해약조를 맺으며 화해의 길을 걷는 등... 어떤 시대라도 서로에 대한 양국 사람들의 열망은 바다를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열망은 각각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혹은 다른 요소들을 잇는 붉은 실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과거 조선통신사가 이은 실을 따라 시대를 넘어 일본에 갔습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오사카, 교토, 시즈오카, 하코네, 도쿄 등 조선통신사의 자취가 남은 장소나 유물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들이 남긴 실을 추보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저희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경험하며 새로운 실을 만들었습니다. 칸사이 대학교와 교류하거나 근대에 관련된 시설을 보기도 했고 현대의 양국에 대한 강연을 들은 게 그것이죠.
양국 사이는 무수히 많은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실들은 다툼 속 희생된 사람들의 피로 붉게 이어졌을 수도 있지만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의 피땀으로 물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들은 과거 통신사의 뜻을 이어받아 한일간의 평화를 위한 실을 짜는 첫걸음을 막 떼었습니다. 이 실이 양국 사이의 평화와 공존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만든 실은 저희와 이어진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져 결국 양국을 잇는 다리를 만들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