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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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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양경찰관을 희망하는 바다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그러기에 항상 해양분쟁과 관련된 사례를 접하는 일이 많았고,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일본과 우리의 역사도 항상 갈등뿐인 역사였기에 일본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번 신조선통신사 행사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조선인의 코와 귀 20만개가 묻혀있는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으로 건너가 200년간 평화를 이루어낸 그때의 조선통신사 원하는 지금의 한일 양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탐방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일화 두 개를 소개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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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청견사를 관통하는 철길 그리고 임청각의 철길]

 

시즈오카에서 도쿄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통신사 일행이 빼어난 경관에 감탄했다는 청견사를 방문하였다. 예전에는 사찰 앞 부분까지 바다였으나 지금은 간척되었다고 하는데도, 청견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청견사를 보다보니 중간에 철로가 관통되고 있었는데 절의 스님께서는 메이지 유신당시 해안가의 끝에 위치했기 때문에 철로가 다른 곳으로 관통하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철길이 절의 중간을 관통하게끔 놓아지게 되었다고 설명하셨다.

 

문득 이 광경을 보면서 안동의 이상룡 선생의 99칸 고택 임청각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표적인 독립운동 가문인 선생의 가문은 독립운동을 위해 99칸 대저택인 임청각을 포함한 안동의 주요 재산을 매각하고 간도로 올라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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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일제는 안동에 철길을 놓으면서 강변에 위치한 이상룡 선생의 고택 임청각을 관통하는 철길을 놓게된다. 이 때 안동에서는 이 일을 두고 독립운동을 한 선생에 대한 보복으로 임청각의 허리를 끊어 독립운동의 기운을 말살시키기 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3.1 운동 기념사에도 일화가 소개되는 등 일제의 민족정신 박해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는 그 시절 철길을 놓았던 사람의 정확한 의중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 천년이 지난 자국의 고찰도 실용성과 경제성의 이유로 철도가 지나다니는 광경을 보면서 과연 임청각의 이야기도 우리의 반일감정이 만들어낸 전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철도가 놓일 때 이미 석주선생을 임청각을 매각해 떠났고, 궁금해 지도에 위치를 검색해보니 해안가에 철길이 지나는 청견사처럼 임청각 역시 정말 철길이 지나는 강변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놀라도록 똑같았다.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는 지금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다. 물론 일제가 우리땅에서 자행한 만행은 셀 수가 없고 이를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없이 떠도는 괴담만큼은 일본에게 제시했을 시 서로간의 신뢰를 잃는 역효과를 낼 것임이 자명하다. 자국의 유서깊은 고찰에도 철도를 놓은 일본을 보며 우리를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일제괴담들의 객관적 근거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통신사가 쓰고 200년간 유지한 경요세계’(청견사에 통신사가 남긴 글: 옥구슬이 조화롭게 빛나듯 조선과 일본 양국도 조화를 이루어 세계를 아름답게 밝혀 나가자라는 의미)를 다시 이루려면 우리역시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21세기 통신사 선단은 언제 출항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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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에서 그동안 여정동안 보고 느낀점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바다와 선박을 배우는 학생답게 200년간 통신사의 여정을 바다에서 바라보았다.

 

일본과 우리의 바다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분쟁과 갈등의 장이였다. 왜구, 여몽연합군 일본원정, 대마도정벌, 임진왜란 등 우리의 바다에 평화란 없어보였다. 그러나 통신사가 오고간 200년의 시간 동안 그러한 역사에 큰 반례가 생겼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마도에 도착한 통신사선 6척은 일본의 수십, 수백척에 달하는 왜선의 호위를 받으며 연합선단을 이루어 오사카까지 항해 갔다. 그리고 이번 탐방에서 확인한 고치소이 빈칸, 복선사 등 그들에 대한 극진한 대접은 아직도 일본 세토내해 곧곧에서 평화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와 일본을 둘러싼 바다는 통신사가 오고간 시절의 바다만큼 평안할까?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지만 단적으로 국가적인 해양행사인 관함식에서도 그 한일 간의 불화를 찾을 수 있다. 2018년 우리는 모든 해양력이 결집되어 이를 세계만방에 이를 알린 2018년 국제관함식을 개최하였고 해상사열에 저 멀리 브루나이를 포함한 수십 개국의 함정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우리 바로 옆 해양대국 일본은 욱일기 문제로 함정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올해 일본에서 주최하는 2019 관함식에도 일본해군은 우리해군에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시대의 새로운 통신사선단의 항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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