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나쁠 때일수록 더 많은 교류를 해야 한다
일본과는 일찍부터 역사,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가운데에서도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상대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내재하고 있는 막대한 저력은 미래에도 일본을 국제적 위상과 글로벌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비추어봤을 때 한국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일본 전문가에 대한 절대적인 수요도 변함없을 것이며, 이에 부응하여 저는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가 되는데 주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말만 번지르르할 뿐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200년간 평화의 시대를 구축한 통신사가 걸었던 그 길 위에 한일 간의 실마리가 숨어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조선을 사랑한 남자, 아메노모리 호슈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첫 번째 답을 찾았습니다. 진실과 신뢰를 가지고 교류해야 한다는 ‘성신지교’의 정신을 강조한 그는 조선과의 만남을 위해선 조선말 배움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며 조선과 일본의 외교를 논한 [교린제성]과 조선어 교과서[교린수지]를 출간하고 최초로 일본에 한국어 학교를 세우며 서로 진심으로 양국을 알려는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줬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아슬아슬한 한일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큼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간사이대학생들과의 교류회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잦은 정치적, 외교적 문제로 인한 한일 양국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 국민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민간외교’ 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일친구들이 섞어서 조를 이루어 ‘저출산 고령화’ ‘세계유산 등록과 문화재 관리’ ‘양국 문화콘텐츠 교류를 활발하게 하기위한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일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헤어지기 전 시오리라는 친구와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같은 나이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일관계를 위해 행동하고 애써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문뜩 그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우리가 ‘조선통신사’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일 두 나라의 깊은 인연을 확인한 이 모든 것이 400여 년 전 선조들이 지금의 후손들에게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과 3시간밖에 안 만났지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서로를 바라보는데 ‘신유한이 아메노모리 호슈에게 자신이 쓰고 있던 유건 (선비들이 실내에서 쓰는 모자)를 건넸을 때 이런 감정이지 않았을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통신사가 해신제를 지내던 곳인 영가대에서 시작하여 조선 왕의 국서를 전달하기 위한 종착지인 에도성까지. 유적과 유물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발자취를 따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한일간의 관계가 좋지않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닌 4,500km라는 멀고도 험난했던 길을 묵묵히 걸었던 그들처럼 저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합니다.
20살, 값진 경험과 개성 넘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8박 9일의 여정은 제게 복에 겨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 행사를 주관해주시고 끝까지 함께해주신 모든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