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길 위에서
나의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여정은 역사적 존재로서 조선통신사를 이해하려는 소박한 목표에서 출발했다. 에도 시대 일본사를 좋아하여 조선통신사라는 주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고,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해가 현대 한일 관계를 고찰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사 전 신유한의 <해유록>과 아메노모리 호슈의 <교린제성> 등 통신사 관련 주요 자료를 탐독하고, 답사 중에는 유적과 유물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답사가 끝난 이 시점, 그 동안 조선통신사에 대한 쌓은 이해와 답사 과정 속에서 느낀 바를 바탕으로 후기를 작성하려 한다.
외교
新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으로 향한 2019년 7월은 과거사‧경제보복 문제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기이다. 양국 간의 외교전이 적대적인 국민 감정을 일으키는 이 시기, 일본에 가는 누구라도 편한 마음을 갖지 못할 것이다. 평소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던 나 역시 이번만큼은 왠지 적진을 향해 뛰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의 정세를 시찰하기 위해 파견된 탐적사 사명대사처럼 말이다.
조선통신사의 표어는 ‘誠信’이다. 이는 조선과 일본 양국이 조선통신사를 통해 신의를 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통신사가 파견된 17-18세기 조선과 일본은 양국에 대해 서로 너무나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겉으로는 통신 사절을 통해 우호를 확인하지만, 속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오랑캐(夷狄)라 여기면서 경시했던 것이다. 양국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오늘날에도 되풀이된다. 한국의 수뇌와 주요 언론이 일본의 경제 보복을 질타하는 것과 대비되게, 게이오 대학의 니시노 준야 교수는 양국이 합의한 과거사에 대해 한국이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新조선통신사 여정 속에서 과거나 현재나 양국이 양립할 수 없는 입장을 갖고 있음을 느끼고, 특히 현재 외교 갈등은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아쉬운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외교 현안이 잘 해결되어 양국의 우호와 신의가 다시 구축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여정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을 경험할 수 있는 합법적인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늘날에는 일본을 수시로 왕래하지만, 통신사와 관련된 주요 유적지와 그 점을 연결한 노선을 따라가는 경험은 新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특히 평소에는 쉽게 가기 어려운 복선사나 상국사 자조원 등을 견학한 것은 크나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한편 유적과 유물을 대면하면, 깔끔한 활자본 기록을 읽은 것 이상으로 다양한 감상을 받는다. 복선사나 청견사에서 일본 제일의 경승을 바라보니, 수 백년 전 그곳에서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심경이 느껴지고 그 감동이 내 가슴에도 깊이 울려 퍼졌다. 한편 1764년 통신사 일행으로 오사카에서 병사한 김한중의 비석이 있는 죽림사가 기억에 남는다. 일본에 온 직후부터 감기 몸살과 씨름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틴 나로서, 외지에서 병사한 그가 얼마나 서러웠을지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신사의 여정을 걸으면 통신사절의 다양한 인물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뜻깊었다.
문화교류
조선통신사는 최고의 문화사절단이다. 그리고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이뤄진 양국 간의 문화교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끊이지 않는다. 新조선통신사 일행이 간사이대를 방문한 7월 10일은 방탄소년단이 오사카에서 공연한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곳에서 만난 또래 대학생은 방탄소년단의 방일로 매우 들떠있었고, 그들과 K-pop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교‧정치적 긴장 관계를 잊을 수 있었다. 또한 고려미술관 정희수 선생님을 만나면서 재일동포의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깨달은 점은 오늘날 양국 정부의 우호/적대 관계를 넘어, 민간인의 교류는 필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조선통신사를 통해 싹튼 문화교류의 정신을 잘 계승해나가는 것은 우리 대학생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활동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감상을 받다보니 두서 없이 글을 적게 되었다. 끝으로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준 조선일보사와 대한민국 외교부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