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참가후기

김주희.png

 

 

5월의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서 대학생 조선통신사 공고를 보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참가 신청을 하였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역사를 배우면서 조선통신사는 수없이 접해왔던 단어였다. 매년 5월 초 부산에서 열리는 조선통신사 축제, 그리고 부산대에서 교양과목으로 개설되는 부산학을 통해 조선통신사를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조선통신사에 대해 정작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 수준의 지식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견문을 넓히고 조선통신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다.

 

89일 동안 많은 도시에서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사찰, 유적들을 둘러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조선통신사에게 보여준 일본인들의 환대이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오면 통신사를 위해 사찰을 개조하거나 새로운 건물을 만들기도 하고 강을 건너기 위해 배다리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또 일본인들은 조선통신사에게 한시를 써 받거나 자신이 쓴 시를 첨삭 받기 위해 주야를 막론하고 조선통신사를 찾아와 굉장히 피곤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조선통신사가 두 번의 왜란 이후 막부의 요청으로 재개된 사절이니만큼 일본 측에서 조선통신사를 위해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번 프로그램으로 일본에 직접 가보니 그 예상을 뛰어넘는 환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히로시마 시모카마가리에 위치한 고치소이치방칸에서는 당시 조선통신사에게 대접한 식사들을 재연해 놓았는데 그것을 보면 어느 정도로 조선통신사들을 극진히 대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시가현에는 조선통신사가 에도로 가기 위해 지나간 길을 조선인가도(朝鮮人街道)’라고 이름 지어놨는데 이를 통해 조선통신사가 당시 민간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의 답사 일정 중에는 당시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곳뿐만 아니라 조선통신사로서 한일 간의 현대사 관련 답사지도 있었다. 그 중 시모노세키에 위치한 청일강화기념관이 인상 깊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시아사 수업시간에 지겹도록 듣던 청일전쟁의 시모노세키조약이 맺어지던 그 곳이다. 또 토모노우라에 있는 후쿠젠지(福善寺)는 빼어난 풍경으로 조선통신사는 물론 메이지유신이 주역들도 들렸던 곳이라는 설명과 그들이 찍혀있는 사진이 사찰 한편에 놓여있었다.

 

나는 이 탐방에 참여하기 전, 통신사와 관련된 여러 서적과 영상을 통해 통신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조선통신사를 문화사절단이라고 소개하거나 원조 한류라고 소개한 것을 여럿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나에게는 어느샌가 조선이 우월한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하였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청일강화기념관과 후쿠젠지의 메이지유신 인물들의 사진을 보았을 때 굉장히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조선의 우울했던 근현대사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89일간의 탐방을 마치고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얻고자 했던 앞으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해답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현재 한일 간의 관계는 내가 탐방 중 불편하게 느꼈던 느낌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국 모두 서로 우위에 서려고만 하기 때문에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점차 악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성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성신 즉 믿음의 관계를 위해서는 누구 하나가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아닌 수평선에 위치한 평등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뜻 깊은 탐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주최해주신 조선일보, 주일한국대사관 그리고 89일간 열정으로 이끌어주신 손승철 교수님, 덥고 습한 날씨에 고생한 24명의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김주희 2.png

시모노세키의 아카마 신궁에서 3조 단체사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