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점・선・면의 스토리텔링이다
곽세현
당신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가? 메타버스니, AI(인공지능)니 하는 용어들도 이젠 진부해 빠진 ‘세미-포스트 4차산업혁명 시대’, 지구가 평평하냐는 황당한 질문에 단호히 ‘Yes’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들을 ‘플랫 어서(Flat Earther)’라고 부르는 그들은 지구가 납작한 원반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얼음으로 둘러싸였다고 믿는다고 한다. NASA(나사)가 공개한 지구의 모습이나 휘어진 수평선은 모두 조작된 이미지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심한가, 불쌍한가, 끔찍한가.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은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없다는 것이다. 과학이나 이성에서 벗어난 비합리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종교라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역사를 ‘플랫(Flat・평평)’하게 본다. 그 평평한 과거 속 원하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것을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납작한 역사관이 과거를 단순화하여 특정 사상을 정당화하고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역시 불가능하다. 이들의 사고는 종교와 같은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역시 한심하고, 불쌍하고, 끔찍한 일이다.
청년은 희망이다. 중장년과 달리 아직 청년에겐 특정 신념이나 가치 체계가 형성될 물리적인 시간이 적었다. ‘지구 평평설’ 뿐 아니라 게르마늄 팔찌의 효험이라던가, 육각수의 만병통치성이라던가 하는 사이비 과학을 믿는 청년을 주변에서 보긴 어렵다. 특정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중장년은 발에 채이는 것과 동일한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청년층은 전통적인 좌우 이념보다는 중도 성향을 더 많이 보이고 있으며, 경제적 기회와 주거 문제 등 실용적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제7회 신조선통신사 탐방 기간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부산에서부터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후쿠야마, 오사카, 교토, 나가하마, 시즈오카, 하코네, 도쿄까지. 과거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그대로 밟아나가면서 양국의 우호를 원했던 당대 통신사와 같은 마음으로 민간 외교사절의 의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긴키대 교류였다.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의 청년들의 관심과 열정은 대단했다. 이 활동을 통해 한일 양국의 청년들이 식민 지배국과 식민지국 관계의 연장선이던 기존의 한일 관계를 뛰어넘어, 동등한 파트너로서 공통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음을 느꼈다. 한 가지 인터넷 유머가 떠올랐다. 요즘 일본 청년들에게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놀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말을 한다고 한다. “반대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것이 피해의식과 문화적 열등감에 절여진 일부 중장년과는 다른 요즘 청년들의 진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탐방 이전의 일본은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작은 세상일 뿐이었다. 한일 양국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양국 공통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극을 습작하면서도 직접 한 번 가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있어도 한미일 동맹은 없는 현실이 딱 매체만을 통해 배운 양국의 모습이겠다. 한일 역사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최근엔 후쿠시마 처리수 문제와 라인 사태 등으로 갈등이 있었기에 양국의 관계는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한일 양국의 우호 역사인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국가유산들을 여전히 지켜내고 보존하는 일본 어른들을 보았다. 과거와 상관없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청년들을 보았다. 행사를 주최한 국내 조선일보사와 외교부의 헌신을 보았다. 이를 통해 한일 양국이 2024년 현재, ‘뉴 노멀(New Normal)’의 관계를 구축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문화 교류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일본 정부는 동아시아 정세 속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한국과 지나치게 친밀해지면 안 된다. 따라서 한일 우호 분위기가 생길 때마다 독도를 언급해 초를 치거나, 이번 라인 사태처럼 반일 감정을 유발하여 거리를 둔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반일 선동을 하는 국내 ‘역사 평평론자’들은 사실상 일본의 의도대로 적확하게 움직여주는 진정한 ‘토착왜구’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애국 시민이라면,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는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상부구조에서 양국의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걸어도, 하부구조인 우리가 서로에 대한 교류와 이해가 있다면, 마르크스주의 사회 이론의 관점에서 상부구조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점·선·면의 스토리텔링이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손승철 인솔 교수님께 이 말을 들었을 땐 조금 의아했다. 필자가 전적대에서 들은 사학과 교수님의 말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교수님은 도리어 “역사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고 하셨다. 둘 중 무엇이 옳을까? 8박 9일의 신조선통신사의 여정 속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언뜻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주장은 사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고. 두 말 모두 자신의 관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다. 역사란 단지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며, 점과 선과 면이 모인 복합 총체라는 의미다. 우리는 이것을 3차원이라고 한다. 지구가 평평한 원이 아닌 구(毬)인 것처럼, 역사는 개별적인 사건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들이 모여 하나의 큰 면을 형성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내년은 한일 수교 60주년이라고 한다. 이번 탐방을 통해 느낀 바와 같이, 양국의 청년들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것은 앞으로의 60년, 600년을 향한 알파이자 오메가다. 필자 또한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내외적으로 녹여내어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가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는 한 세기나 지난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함께 써 내려가는 과정일 것이다.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호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스토리텔링이자, 평평하지 않은 지구에 사는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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