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친절한 나라.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일반적으로 드는 생각이다. 과연 일본에 발을 딛자마자 그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거리에는 흔한 담배꽁초 하나 찾을 수 없었고, 그들은 별거 아닌 일에도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듯했다. 그들의 평소 생활 모습을 본 받아 마땅하다 할지라도 지난 세월 그들의 행태를 본다면 마냥 좋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흔히 일본인들은 그 속내를 알기 힘들며 이중성의 민족이라고 말해진다. 외면적인 행동과 그 행동의 배후에 가려져 있는 실상의 반전은 조선통신사의 과정과 결과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단절되어있었던 조선과 일본의 국교를 회복하기 위하여 양국의 뚜렷한 정치적 목적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로 건립한 막부의 위상을 세우기 위하여 사행을 요청한 것이다. 조선 또한 일본의 청을 받아들인 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가장 컸다. 큰 전란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하여 일본의 동태를 살피고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회유할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 포로를 쇄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몇 차례는 구순해진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으나 점차 그들은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이면에 속내를 숨긴 채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11차 사행인 계미사행때 최천종이 피살되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극진히 대접받던 사행원이 피해를 입은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근본적인 해결에 관심이 없었고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으며 후에 한일 양국 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치쿠린지에서 모시고 있는 최천종 위패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조선통신사는 형식적인 교린에 불구한, 정한론의 시발점이 아니었을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과거는 불변의 것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사건의 국면을 다른 관점에서 상상하는 것도 제법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발탁이 된 경우이다. 최하급 무사일 뿐이었던 그가 만약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조선 정벌의 야망 아래 감행된 임진왜란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며 화호를 회복하기 위한 조선통신사 또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청일 강화 기념관에서 그 상상은 절정을 달했다. 청일 강화 기념관은 우리네가 익히 알고 있는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면서 일본은 조선이 중국의 연장선에서 탈피하고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기를 요구했다. 그럴싸하게 들릴지라도 이것은 일본이 조선에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밑거름이었다. 기념관 앞에 우두커니 놓여있는 흉상을 보며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했다면 어떤 판국으로 변화했을지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나라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형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민족 수난의 역사라고 일컬어지는 일제강점기가 도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미 지나온 일을 상상한다 한 들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한 점이 변화하게 되면 선이 바뀌게 되고 그다음 단계인 면에서도 다른 모양을 띌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물론이요,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들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되짚어 본다면 앞으로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먼 길에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오사카성 앞에서 요즘 대세, 시바견을 만났다.
결과적으로 신 대학생 조선통신사에 참가하면서 조선통신사에 관한 정보를 많이 배웠지만 그것 이상으로 인생에 있어서 가치 있는 경험이 되었다. 이번 학기 졸업논문으로 조선통신사에 관하여 작성하였고 오랜 시간 연구하였기에 조선통신사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알고 있을 거라 판단했다. 따라서 이번 탐방을 통해 알고 있었던 유물이나 유적지를 실물로 보는 데 그 의의를 두고 있었다. 조선통신사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핵심적인 장소를 모르는 경우는 태반이었고 자신만만해 있던 나의 지식은 초라한 수준일 뿐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매사에 있어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에 안일하게 갇혀있지 않고 나를 채찍질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지녀야 함을 깨달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많은 것을 얻게 해준 이번 프로그램과 8박 9일 동안 웃으며 즐겁게 지냈던 25명의 학생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