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 이보다 일본을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일본 관광을 가는 관광객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 일본의 문화를 칭찬하는데 역사나 스포츠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를 두고 적대시한다. 본인 역시 일본의 문화가 좋아 자주 관광을 갔지만 괜히 오사카성이나 나고야 성을 보면 카메라를 끄고 발걸음을 돌렸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강화를 희망하며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지만 전쟁의 아픔을 겪은 조선은 탐적사로 대응하며 화친을 거부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의 삼사와 더불어 다양한 수행원 4-500명이 함께 동행해 부산에서 에도까지 9~10개월을 걸쳐 다녀왔다. 분명 탐적사로 출발했지만 아카마신궁의 극진한 숙박대접, 시모카마카리 섬의 고치소이치방칸, 한 사람 한 사람을 극진해 대해주는 지쿠린지 주지스님의 사랑은
신뢰와 이해를 쌓아가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님의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는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해가며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믿음을 통한 관계를 만들었고 약 200여년 기간 동안 교류를 해왔다. 후에는 어엿한 통신사가 되어 문화교류의 꽃을 피웠다.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일본소비금지가 맞물리면서 양국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시국에 “대학생 신 조선통신사”로 한국을 대표해 일본을 떠나는 우리의 마음도 선조들과 같았다. 통신이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마음 한 켠에 견제를 품고 있었다. 그렇게 의심가득한 마음으로 일본에 첫 발을 내딛었다. 아카마신궁에서는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일찍부터 주지스님이 나와계셨고,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님의 생가를 지키시는 선생님은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문을 열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고려인미술관을 책임지시는 선생님은 유창한 한국말로 조선통신사의 유물을 설명해주시고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계셨다.
조지 W. 부시는 “역사는 움직인다. 그것은 희망으로 나아가거나 비극으로 나아간다.”라고 말했다.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조선은 일본과의 관계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조선통신사가 파견되는 그 오랜기간 단 한 차례의 전쟁 없이 평화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현재 한일 양국은 독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지용 등 갈등의 역사 속에서 대립하며 멈춰있다.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더 깊어지고만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답을 찾지 못할 때 봐야할 정답지는 바로 역사다. 역사는 지난날의 우리를 보여주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선조들은 믿음, 신뢰, 성실, 성심으로 상호 신뢰관계를 쌓으며 통신을 이어갔다.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나가려 했다. 이제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때다. 희망으로 나아갈 것인지, 비극으로 나아갈 것인지.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