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일(월)부터 8박 9일 간 진행되었던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이 7월 3일(화)을 끝으로 여정을 맺었다. 길고도 짧았던 여정은 인천공항에 발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끝이 났음을 깨닫게 해주고, 매일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올라오던 손승철 교수님의 밴드 강의가 올라오지 않자 드디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나는 일본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를 전공하면서 배웠던 한국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얼룩진 역사였고, 아직까지도 일본 측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은 좋지 않은 감정을 넘어선 ‘혐일(嫌日)’까지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독립 운동사를 배우거나, 역사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마다 다시 한 번 다짐했었고, 스포츠와 같은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도 가득했다. 이번 일본 답사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찬 채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은 생각보다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스미마셍.”을 외치고, 항상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던 일본인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게 사과하기 인색했고, 혐한(嫌韓)감정이 팽배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은 호의적이었으며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약 400년 전,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조선 초기부터 지속된 왜구의 침략부터, 삼포왜란을 거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까지. 탐적사(探敵使)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통신사는 양 국가 간 교류라는 큰 틀 속에서 적이라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쓰시마 섬에서부터 시작된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시모카마가리, 후쿠야마, 오사카, 시즈오카, 하코네를 거쳐 도쿄까지. 그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열렬히 환호해주던 백성들과 융숭하게 대접하던 다이묘들, 그리고 국빈 대우를 해주는 쇼군을 보면서 조선통신사의 생각은 그대로였을까. 지금껏 적으로만 여겼고 조선보다 못한 국가라는 인식을 탈피하는 그런 여정이 되었을지, 혹은 여전히 근본 없는 국가라고 여겨졌을지는 통신사 일행의 개개인 생각에 달렸을 것이다.
하코네에서 찍은 신조선통신사.
다시 우리의 행렬로 돌아와서, 통신사가 끝이 난 1811년 이후 약 200년 만에 新조선통신사의 자격으로 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이에 앞서 2017년 말,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것은 한일 교류에 있어서 조선통신사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본다.
우리는 단순히 선배 조선통신사가 갔던 그 길을 답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새롭게 한ㆍ일 관계를 풀어나가야 하는 임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新조선통신사 일정 중 오사카에서 간사이대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것이며, 한일 양국이 지향해나가야 할 ‘평화와 선린 우호’의 정신을 되새겨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을 떠나 한국에 도착한 현재, 다시 한 번 그 곳에서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어색한 분위기 속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준 간사이 대학교 친구들, 길을 물어봤을 때 하나하나 잘 알려준 시민들 등 호의적이었던 일본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번 답사를 통해 나란 존재는, 적어도 매우 호의적이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일본인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한ㆍ일 양국이 해결해야하는 큰 문제들이 조속히 마무리 지어졌으면 좋겠다.
다음에 일본을 방문하는 일이 생긴다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많이 외치는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떠나기 직전 보았던 도쿄의 맑은 하늘 아래서 조선통신사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