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를 통해 배운 넓은 안목의 한일 관계
대학교 입학 후 외교, 국제정치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한일 간의 정치적 분쟁 및 두 나라의 애증 관계에 관심이 많아 이번 답사를 신청하게 되었다.
일본 기업에 대한 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이 최고조인 시점에 가는 터라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친절하고 열정적인 우리 4조와 학구열에 불타오른 나머지 학생들을 보면서 그러한 걱정은 접어두고, 최대한 많이 배워오자 하는 마음으로 이번 여정에 임하게 되었다.
통신사의 길을 따라 조선통신사 박물관이 있는 부산 영가대에서부터 출발한 우리는, 시모노세키 – 히로시마 – 후쿠야마 – 오사카 – 교토 – 시즈오카 – 하코네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에도까지의 8박 9일 여정을 거쳤다.
‘조선통신사’, 한국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보거나 들어보게 되는 이름이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 끝난 후 약 10여년 뒤 변방의 안정을 위해 일본과의 교류를 재개했다. 처음에는 침략의 의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탐적사’란 이름으로, 그 다음에는 강제로 끌려간 유민들을 송환하기 위한 ‘회답 겸 쇄환사’ 그리고 ‘통신사’란 이름으로 일본과의 교류를 진행했다.
사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중고 12년간 배우는 역사책에는 조선통신사의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1592년에 임란이 일어나서, 이순신 장군의 활약 후 사명대사를 필두로 한 사절단이 국교를 재개했다는 것, 그리고 나선 내정(內政)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19 세기 중후반 이야기로 넘어온다. 나 또한 단지 “이러한 일이 있었 구나”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답사를 거치면서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된 통신사 관련 유물 333점과 같이, 조선통신사로부터 비롯된 양국의 200여 년간의 평화가 앞으로도 지속해야 할 한일 관계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첫 일정이었던 아카마 신궁 에서는, 책에서만 보던 하얀 옷을 입은 신관께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유물들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셨다. 또한 통신사가 거쳐 가면서 음식이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한 고치소이치방칸 에서는 현대인인 나의 기준으로 봐도 진수성찬인 당시의 3즙(국) 15채(찬)을 보고 일본인들이 이들 일행을 얼마나 극진하게 대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과 대마도에서 일하며 일본 최초로 조선어 교본 사전을 만들어 한일간의 가교 역할을 한 아메노모리호슈 기념관에서는, 그와 관련한 자료를 너무나 소중하게 보관할 뿐더러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손으로 박물관을 직접 꾸민 히라이 상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함을 느꼈고, 한 사람이 남긴 위대한 발자취가 후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조선통신사 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답사 중 거친 고려박물관과 민단, 재일 사업가가 기증한 동경 한국대사관 내 등을 둘러보면서 자세히 잘 몰랐던 ‘재일 교포’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일본의 천년수도인 교토 한복판에서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정태수 관장님도 기억에 남는다. 재일교포로 태어 나셨지만 우리말로 열심히 한국과 관련한 문화재를 설명해 주시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또한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국땅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자리 잡아 고국의 발전에 보탬이 되어준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이러한 여정을 거치고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대사님께 여정의 마지막 관문인 수료증을 받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국 한 이튿날, 대사님께서 외무성에 초치되어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에게 수모를 겪는 등 한일갈등이 역대 최고조로 달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이번 일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든 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 대사가 이러한 수모를 겪었다는 것에 대해서 나또한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임진왜란 후 불과 이삼십년 만에 일본에 갈 수 밖에 없었던 통신사 일행처럼, 일본과의 관계는 결국엔 ‘공생’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인솔해 주신 손 교수님의 말씀처럼 ‘공생’을 기반으로 두는 한일관계, 감정과 복수심이 앞서는 것이 아닌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양국관계를 어떻게 평화롭고 지혜롭게 해결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이번 8박 9일간의 여정이 우리에게 남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