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총은 일본 교토시에 있는 일본의 국가 지정 사적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베어 온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이다. 여기에 최소 10만 명의 귀와 코가 묻혀있다고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이 조선인이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받드는 도요쿠니 신사에서 불과 백여 미터 거리에 있고, 1915년에 무덤과 그 둘레를 히데요시를 존경하는 우익 인사 오바타 이와지로가 정비하였다.
조선통신사들도 이 조선인이총을 지났고 우리도 답사하였다. 이유 없이 희생되어 머나먼 타국에 묻힌 동포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선인이총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은 후 많은 교류를 하고 현지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던 조선통신사들에게 우리의 아픔을 기억하라고, 우리가 여기서 똑똑히 듣고 있으니 우리를 잊지 말라 호소하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조선인이총은 외롭고 초라해 보였다. 자국의 욕심을 위해 타국의 무고한 사람들을 도륙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조선인이총을 만들 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들이 불쌍하다 하였지만 나는 베어온 귀와 코를 처리하기 어려워 댄 핑계라고 생각한다. 조선인이총이 조선통신사가 지나는 길목에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위협하려는 의도로 생각되기도 한다.
훗날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으로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받았다. 그 당시 70여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였고 그 중 7만여 명이 조선인이다. 그 결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고 일제 강점기 또한 끝이 났다.
신조선통신사 일행은 히로시마 평화공원과 자료관을 답사하였다. 원자폭탄 투하 후 내리던 검은 비는 그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흘리던 눈물과 같았다. 자료관에 전시된 사진 속의 사람들의 공허한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너의 가족이었어도 저질렀을 것인가? 우리를 보고도 전쟁을 멈추기 위한 불가피한 죽음이란 말을 할 수 있는가?물론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 등의 피해도 크고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이 멈추지 않았다면 또 다른 인명피해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원자폭탄 투하는 어떤 이유로도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민간인의 무고한 죽음이다. 역사 속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전쟁으로 인한 비극, 이유 없는 죽음 앞에서 국적과 시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훗날 사죄와 보상을 한다 하여도 무고한 사람들이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지금의 평화가 있기 전에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들의 무고한 죽음 후에 이루어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교류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모두가 협력해야 할 것이다.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역사적 비극을 잊지 않고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