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이번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을 통해 두 가지를 경험하고 확인했다. 하나는 스스로 체험하고 감동하는 답사가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에 있어서 얼마나 효과적이며 가치를 갖는가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통해서 미래와 현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200년에 걸쳐 조선과 일본 양국을 이어주었던 조선통신사가 행렬했던 길을 밟아 부산에서 출발해 시모노세키, 후쿠야마, 오사카, 시즈오카 등을 거쳐 도쿄까지 9박10일간의 답사를 진행했다. 우리는 눈밭에 나있는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걷듯 천천히 일본 열도에 흩어져 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추적해 나갔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시켰으며, 19세기 말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안정적 관계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 낸 역사적으로 중요한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의 그 비중이 크지 않을뿐더러, 대학 전공수업에서도 이를 자세히 배울 기회가 적었다. 여정의 초반, 조선통신사에 대한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단원 모두의 지식이 일천한 상태였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답사가 시작된 지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조선통신사의 준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이크로 열띤 강의를 해주셨으며, 버스에서는 쉴 새 없이 영상자료들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현지에는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전해주기위한 전문가 분들의 강연이 수 개나 준비되어 있었다.
강연과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역사와 직접 호흡하고 역사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좋았다. 시모노세키의 아카마 신궁에서는 간몬해협을 내려다보면서 바다로 뛰어들었던 안덕천황의 이야기를 노래한 조선통신사와 그 안타까움을 같이 했고, 일동제일형승의 풍광 도모노우라에서는 200년간 변함없었을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함께 했다. 교토의 귀무덤 앞에서는 환영 잔치를 거부하고 민족의 아픔에 고개를 숙였을 선조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굉장히 놀랐던 것은 조선통신사가 방문했던 장소와 그들이 남긴 물건, 글들이 굉장히 잘 보존되어있고, 해당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이나 신사, 기념관의 관리자분들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들을 지켜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통신사가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큰 환대를 받았는지를 백번 읽고 듣는 것보다 상기된 얼굴과 빛나는 눈동자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이 조선통신사 관련 유물이 어떻게 전해 내려오고 이것을 어떻게 보관해 왔는가를 설명하던 일본인 관리인들을 한 번 만나 보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어디를 찾아도, 조선통신사와 21세기의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조선통신사가 200년 전에 시작한 평화의 역사를 실제로 만나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200년간 지속되어온 한일 양국의 평화가 19세기에 이르러 위기에 빠졌듯이, 2002 월드컵 공동개최나 한류의 인기를 통해 평화의 무드로 가고 있던 한일 관계는 최근 다시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65년 국교가 수립되었을 당시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지금까지 양국의 관계를 발목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식민지 침략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있어서 피해자인 우리가 무조건적인 용서와 관용을 베풀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공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진해왔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것과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과의 관계가 악으로 악으로만 치닫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든 실든 일본은 우리 옆에서 수천 년을 함께 해오지 않았나.
이렇게 한일 관계가 막다른 길로 빠져든 것 같은 현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조선통신사’이다. 일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 그런데, 1598년 종전하고 채 10년도 되지 않은 1607년에, 조선 정부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 조선 정부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기위해 일본과 국교를 재개했고, 이러한 줄타기 끝에 시작된 통신사라는 사절은 향후 200년, 12회를 이어져 왔고, 이는 결국 동아시아에 오랜 평화를 가져왔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골동의 취미가 아니라 역사적 통찰력을 기르기 위함이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금의 한일 관계에 있어 조선통신사가 가지는 함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외교관계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확실히 세워야 하고 저들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저들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궁극적 목표는 우리나라가, 동아시아가 넓게는 세계가 평화로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최근의 일본 정치계의 모습을 보건데, 그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절대로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통신사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그 궁극적 지향점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스스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감동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답사의 중요성’과 우리가 ‘역사를 배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 대해서 고민하고 실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