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고 되돌아보는 12월 나를 비롯한 전국 30명의 대학생은 새로운 시작과 도전에 마주했다.대학생 신조선통신사-통신사의 길을 따라서’라는 일본에서의 9박 10일 여정이 바로 그것이다.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내가 자란 부산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일본군의 주둔으로 오랫동안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일제강점기는 두말할 것도 없다.그렇다 보니 부산에는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어린 시절부터 유린의 역사를 보고 자란 탓에 일본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뿌리내렸다.존경하는 역사 인물을 꼽으라면 일본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발 장군을 댔으니 말 다했다. 이러한 증오심은 한일전이 있는 날엔 맹목적인 비난으로 이어졌다.한일전은 피를 끓게 하였고 그러다 보니 상식의 눈을 멀게 했다.
이 때문일까.내게 신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은 남다르게 다가왔다.증오와 불신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 가본 일본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다름 아닌 내 고향 부산이다.대마도에 있는 한국전망대에 올라 자욱한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고향을 잊지 못한다. 겨우 떨어진 한국과 일본이 정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절로 실감 났다.그러면서도 안개에 파묻힌 한국을 바라보자 하니 양국 사이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신조선통신사의 본격적인 여정은 이러한 생각을 던져준 채 시작되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시대 국왕이 일본 최고 권력자인 쇼군에게 보냈던 외교사절단이다. 한 번에 300~500명, 1년이 걸리는 대행렬이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에 걸쳐 파견되었는데 이 시기 200여 년 동안 한일 양국은 유례없는 평화 시대를 열었다. 조선통신사가 한일 교류와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래서 신新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은 여정 내내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선조들이 미리 닦아놓은 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니내심 든든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대마도에서 에도까지 향하는 여정 속 직접 마주한 일본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니었다. 옛 조선통신사가 일본 곳곳에 남긴 우정의 흔적을 보고 아카마 신궁과 시모카마가리에서 우리 선조들이 받았던 극진한 대접을 살펴보며 믿음으로 통했다는 당시 시대를 회상할 수 있었다. 특히 죽림사에서 본 조선통신사 김한중의 묘비가 기억에 남는다. 머나먼 타국에서 병세가 깊어져 고국을 그리워했을 슬픔에 아연했다.또 그곳에서 김한중을 정성들여 간호했다는 주지의 인간애도 확인할 수 있었다.여정 중간 중간 이어졌던 한일 관계 전문가의 강연은 그간 소홀하게 여겼던 화해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10일의 신조선통신사 일정을 통해 앞서 언급한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지웠다고 공언할 순 없다.다만 선조들이 나누었던 성신교린의 정신을 직접 확인하고 일본에서 주어진 자유여행을 통해 그곳의 일상을 목도하며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보려 노력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어쩌면 선입견을 걷어내는 시도가 현재의 경색된 한일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