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무너진 한일관계를 회복하고, 200년간 이어진 외교사절단인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역사를 올바르게 배워 나갈 수 있는 경험을 또 어디서 해볼 수 있을까.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히로시마 평화공원과 고치소 이치반칸이었다.
먼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원폭돔을 처음 마주하였을 때, 앙상하게 남은 철골이 당시의 피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는 현재 30여 개의 위령비와 평화기념 자료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를 시작으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꼼꼼히 답사했다. 자료관에서 원폭 피폭 과정들을 읽으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기도 했지만 이 원폭의 투하가 광복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안타까움과 광복의 감격이 뒤섞여 모순적인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8박 9일간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오사카, 교토, 시즈오카, 도쿄 등을 답사하면서 우리는 마냥 환경을 구경하기보단 전란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조선을 잠시 떠나온 선조들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해 보기도 하였으며, 어느 곳이든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일본인들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조선통신사가 받은 큰 환대의 1/2, 아니 1/10일지라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고치소이치방칸(御馳走一番館)에서의 환대, 잘 보존된 유물과 글들은 200년 전 시작된 역사에 뛰어든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쓰시마 번주가 ‘이곳의 접대가 제일이었다’ 라고 답했을 만큼 접대의 성대함이 느껴졌고, 특히 시모카마가리섬에서는 통신사 예우에 대한 세부조항을 주민들에게 주지시켜 통신사가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이런 세세한 정성이 최고의 접대를 만든 것이 아닐까.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만들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역사는 점과 선과 면의 스토리텔링이다.’
손승철 교수님께서 탐방 중에 계속 말씀해 주신 이 두 문장이 탐방이 끝난 후에도 가슴에 크게 남아있는 듯하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우리는 과거 선조들의 교류로 이어진 평화로부터 편하게 유적과 유물을 관람하며 역사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일 간의 갈등은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선조들의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선조들이 쌓은 신뢰, 믿음처럼 우리 또한 성신교린(서로 속이거나 다투지 않고 진심을 다해 교류한다)의 마음가짐으로 동반자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갈 한일관계가 기대된다.
더운 날씨에도 끝까지 동행해 주신 손승철 교수님, 배혜원 가이드 선생님, 김지원 기자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하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