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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김다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태초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일본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기저에는 일본을 향한 분노의 기류가 아직도 흐른다.

그런데도 처음, 신조선통신사로서 일본에 가게 됐을 때 마냥 즐겁기만 했다. 내가 딛게 될 한 발의 무게는 인지하지 못한 채 배에서 내내 일본 맛집과 쇼핑리스트를 검색했고 기념 사진찍기에 바빴다.

안개로 자욱한 쓰시마섬에 도착하자마자 교수님의 열띤 강연이 시작됐다. 타국의 경치를 즐길 새도 없었다.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전 교육 때 받은 책자를 손에 쥐었다. 역사라고는 학창시절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기에 탐방 기간 내내 남들보다 많이 읽고, 듣고, 주변을 살피며, 열심히 걸어야 했다. 어느 것 하나 신중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됐다.

과거의 조선통신사처럼 최고의 것들로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나에게 통신사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도, 사학과 학생들을 찾아가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에 바빴다. 자꾸만 빠져나오려는 나의 고질적 버릇인 ‘적당히 대충’을 간신히 밀어 넣고 나서야 겨우 일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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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타를 입으며 일본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었고 이색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매일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지만 돌이켜 보니 아쉬운 순간도 있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쓰이기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믿고 있는 사회적 개념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다. 당연한 상식일지도 모르는 이 사실을 당시에는 왜 알지 못했을까.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르게 바라보는 일본인을 만나자마자 오랫동안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갖게 된 편협한 시각이 내 눈을 가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 내려버린 결론은 내 진심을 담기 힘들었고 귀를 닫게 했다. 수많은 잣대를 앞세워 판단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닫힌 귀와 눈은 의외의 곳에서 열렸다. 한일학생교류회에서 만난 일본 대학생들 덕분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우리와 소통하길 원했다. 부족하지만 더듬거리며 그간 배운 한국어로 말 걸어 주었고, 먼저 손 내밀어 주었다. 덕분에 양손 가득 쥐고 있던 펜과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쇼핑백 한가득 선물을 준비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져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만큼 기분 좋은 기억이다. 어디선가 역사의 주인공은 민족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만난 일본은 내 마음속에 커다란 파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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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을 때 개인포즈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이때 만큼은 국적 상관없이 섞여서 유쾌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서로의 손을 엮어서 하트를 그렸다는게 예뻐보였습니다.

‘무사히 탐방을 잘 마치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의 관계는 점점 좋아져 100회, 200회 신조선통신사까지 이어 나갔습니다’라고 이 글을 결말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식민시절의 일들 때문이다. 광복으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덧나며 우리를 괴롭힌다. 안타깝지만 탐방에서 돌아온 지 수일이 흘렀음에도 매듭짓지 못한 이 문제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시판 중인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사실이나, 상황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심도 있게 공부해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탐방을 통해 양국 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한 변화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게 됐다. 신조선통신사가 아니었다면 무의미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장소들에 점을 찍었고, 그 점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연결의 끈이 생겼다. 이 끈들을 엮어 얼마나 촘촘한 그물로 만들 것인지, 이것으로 어떤 물고기를 잡을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신조선통신사로서의 경험을 기저로 해, 과거와 달라진 현재를, 현재보다 의미 있는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양국 간의 관계개선에 스노우볼이 되어 준 N기 신조선 통신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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