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말한다. 이번 8박 9일의 여정, 나도 ‘조선통신사’가 되어 일본을 방문했다. 조선시대의 조선통신사들은 보통 300~500명 정도의 규모에 6개월~1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지만 이번 우리 여정은 30명의 규모에 8박 9일 일정을 다녀왔다.
역시 ‘신(新)’ 조선통신사다운 현대판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KTX를 타고 이번 탐방에 첫 출발을 내딛는 순간 여느 여행과는 달리 무거운 책임감과 설렘이 공존했다. 과거 조선통신사들의 기분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모인 조선통신사 동기들과 대마도로 가는 배편을 탑승했다. 배로 일본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간 개념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눈을 붙이려고 잠든 순간, 이미 대마도에 도착해 있었다.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불과 배로 1시간을 달리면 일본이 나온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하고 놀라웠다.
우리의 첫 답사지는 ‘한국전망대’였다. 이곳에서는 한국 땅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지리상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한국 통신사 로밍이 터질 정도로 매우 근접한 거리에 한국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마도는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적으로도 가까움을 깨달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박물관이나 자료관을 가면 한국의 낯익은 불상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곳곳에 우리의 감성과 문화적 풍습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나에‘란 곳이 가장 아름다웠는데 이곳은 쓰시마의 옛 선착장으로 항해에서 돌아온 배들을 넣어두거나 수리했던 곳이다. 이 아름다운 곳을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온다면 더욱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마도를 떠나 일본 본토로 들어온 후 시노모세키의 ’아카마 신궁‘이 기억에 남는다. 조선통신사의 숙소로 이용된 이곳은 우리가 방문했던 날의 궂은 날씨에도 신비하게 빛났다. 그리고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청일강화기념관‘에서의 깨달음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청나라와 체결한 강화조약으로 조선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우리의 여정 중 히로시마의 평화공원, 한국인 위령비도 빼놓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 시내 피폭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당시 희생됐던 한국인 위령비도 방문하여 추모했는데 이곳에서 안타깝게 그리고 너무나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이곳에 오지 못했던 내가 너무 무지하게 다가왔다.
오사카와 교토에서는 ’오사카 성‘,’귀 무덤‘,’동지사 윤동주, 정지용 시비답사‘,’지쇼엔‘ 방문 등 여러 의미 있는 곳을 탐방했다. 모두 조선통신사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또한 교토 조형대학에서의 일본인 대학생과의 교류도 너무 즐거웠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리고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역시 또래의 공통 관심사는 같은 거구나 ‘라고 느꼈다. 소통할 수 있음에 기뻤다.
마지막으로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도쿄에 입성해 동경 한국 대사관에서 만찬은 정말 옛 조선통신사들의 험난한 여정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가기 전에는 짧게 느껴졌던 8박 9일이지만 실제로 그만큼의 여정을 끝내니 생각보다는 짧지 않음을 느꼈다. 이번 탐방을 통해서 ’조선통신사’라는 단어를 얼마나 보고 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버스 안에서의 교수님의 강의, 답사지에서의 책자와 설명문, 다른 조선 통신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등등, 적어도 1000번 이상은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귀와 머리에 그리고 가슴에 깊이 ‘조선통신사’라는 단어를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갔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번 탐방의 소중한 경험이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