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고교 교과과정을 거치면서 조선통신사에 대한 내용을 배워왔다. 조선통신사는 국사(國史) 교과서 한 페이지 남짓한 설명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탐방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리고 간과하고 넘어갔던 조선통신사에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 있었고 수많은 스토리가 엮여 있음을 배워나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우리를 지도해주신 손승철 교수님께서 여행 내내 강조한 말씀이 있다. ‘역사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다. 점과 점을 연결하여 선을 만들고 선과 선을 연결하여 면을 만든다.’ 즉, 역사는 유기체이며 관계맺음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실제로 8박 9일간의 여행코스는 과거 조선통신사의 자취를 좇아서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이루어졌다.
조선통신사는 수차례에 걸쳐 대륙의 찬란한 문화를 일본에 전달하여 그들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했고 일본은 이를 극진히 대접했다. 역사는 유물과 유적을 남긴다. 조선통신사가 제공받던 융숭한 식사를 전시하고 있었던 시모카마가리의 고치소이치반관, 조선통신사 행렬을 위해 특별히 건설한 시가의 조선인가도, 강을 건너기 위해 배로 다리를 놓았던 오카키의 후나바시(船橋), 조선통신사를 대접하기 위해 절의 스님들이 아닌 성(城)의 사무라이들이 극진히 대접했다는 하코네의 종안사까지 다양한 곳에서 우리는 이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토의 귀무덤(耳塚)은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억울한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숙연한 자세로 일동 묵념을 했다. 귀무덤 바로 앞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인 풍국신사(豊國神社)가 위치하여 다소 아이러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선통신사와는 관련은 없지만 원폭투하로 인한 희생자를 위령하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서도 희생자 전체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들의 넋을 기렸다. 가슴 한켠에 앞으로 나아가되 뒤를 돌아보며 잊지 말자라는 다짐을 새기기도 하였다.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에서는 한 액자가 기억이 난다. ‘안녕하세요’라는 글자에 맞춰서 일본 학생들이 도열한 사진이었다. 조선과의 무역 및 정치외교를 담당한 외교관이었지만 조선어에 능통했던 어학자이기도 한 아메노모리 호슈는 조선어 교과서 ‘교린수지(交隣須知)’를 펴내는 등 조선어 교육에도 힘썼다. 그래서 그의 기념관에 일본 학생들의 한글 도열 사진이 걸려있는 것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며 한?일 양국의 교류의 흔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습관을 배우는 일이며, 한 민족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일이다”는 그의 말은 대상 국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언어습득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오사카성, 슨푸성 등에서는 한국의 성과는 다른 축성(築城) 양식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못(池)으로 두른 해자(垓字)라는 방어시설에서 두드러졌다. 그 밖에 검문소인 하코네 세키쇼(關所), 웅장안 크기를 자랑하는 후쿠오카 시립박물관, 오사카 역사박물관, 윤동주 그리고 정지용 시비가 놓여있던 동지사대학, 상국사(相國寺)와 지쇼인(慈照院), 이동 시 탑승했던 신칸센 등은 조선통신사뿐만 아니라 일본 전반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귀국하는 날 한국문화원에서 청강했던 게이오 대학 교수의 강연은 마지막 날 매우 통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일본에 있어서 상대국인 한국에 대해 자국민인 나보다 더 풍부한 지식과 열린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 것이었다. 또한 무서리만큼 냉철한 시선과 차분한 자세로 한?일 양국의 관계를 논하고 있었다. 실제로 강연을 듣고 학생들의 질문 세례가 무수히 쏟아졌음에도 하나씩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답변해 나갔다. 이제는 뜨거운 가슴을 조금은 식히고 이성적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겠다.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사절단의 역할을 수행했다. 통신(通信)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선린우호(善隣友好)를 상징한다. 최근 여러 문제로 인해 한?일 양국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바꾸려고 노력한 선조들의 행적을 본받아 ‘新조선통신사로서, 그리고 시대의 젊음을 상징하는 대학생으로서 과연 양국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 대한 이해라는 작은 발자국은 앞으로 한?일 양국 평화의 위대한 발자취로 남을 것임을 확신한다. 한 페이지 남짓했던 조선통신사가 이제는 나를 포함한 30인의 新조선통신사의 가슴속에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다. 역사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다. 점과 점을 연결하여 선을 만들고 선과 선을 연결하여 면을 만든다. 그렇다면 면과 면을 연결하면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역사의 면면을 살펴 공간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