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던 여정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조금 안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조선통신사로서의 임무를 띠고 일본열도를 탐방하고 있는 것 같은 내 기분은 아직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처음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할 때만해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떻게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타국에서 함께 보낼 것인가 막막했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대마도에 도착했을때도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과 간간이 닿는 연락에 설레고 그때를 추억하며 더욱 즐기지 못했던 내 스스로에게 아쉬워하게 되었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고, 그 중 일본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 나에게 학사과에서 온 전화 한 통은 매우 좋은 기회의 통로를 열어주었다. 언젠가 학교 선배님들의 졸업논문 발표회에 참석했다가 조선과 일본의 무역의 경로였던 ‘왜관’에 대한 논문발표를 듣게 됐다. 이는 한국사와 일본사에 대해 전혀 별개로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양국의 역사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고, 이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대학생 신(新)조선통신사’ 활동은 이것의 연장선으로 나의 역사공부에 있어 커다란 계기가 되어주었다.
사실 나의 역사이야기 속에 ‘조선통신사’의 비중은 전혀 크지 않았다. 굳이 꼽으라면 고등학교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던 정도. 그러나 이번 활동을 통해 그 한 페이지에 작은 비중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관련 책자를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특히나 지금 한일관계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역사학도에게 역사 속에서 찾는 한일관계 이야기는 매우 큰 흥미로 다가왔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마도를 거쳐 마지막 동경에서 끝을 맺은 이번 여정은, 과거 조선통신사가 임금의 명에 따라 부산을 통해 에도 까지 거쳤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일주일 조금 넘는 기간으로 가능했지만 그 당시에는 직접 길을 걸어 짧게는 반년 길게는 일 년의 기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그 속에 많은 위험이 뒤따랐겠지만 통신사행렬은 12차례나 진행됐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통신사의 행렬이 계속되었던 200년간 양국은 평화의 시기를 맞았다.’라는 책의 글귀처럼, 그들은 평화사절단으로서 맡은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 그 길을 지나온 것이다.
그렇게 8박9일 동안 조선통신사의 행도를 걸으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만나고 함께한 많은 이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무릇 여행이란 사람들과의 소통과 추억을 만들어감에 따라 즐거워지는 것으로, 이번 여정은 그와 더불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분명 500년 전의 통신사 선배님들도 기다 긴 여정동안 그 속에서 많은 추억을 쌓고 좋은 인연들을 만들어갔겠지. 그리고 이를 이어 이번 ‘신 조선통신사’로서 활동하게 된 나 역시도 과거 조선통신사가 양국의 평화유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앞으로 ‘중요한 역할’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물론 이번 활동이 내 인생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