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9일이라는 시간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차라리 가기 전 설레며 준비하던 시간과, 다녀와 그리며 정리하던 시간은 셀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신조선통신사로서의 책임감으로, 화려함과 어둠이 뒤섞여 나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그리고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그 빛에 프리즘을 살며시 대어 보아야겠다.
빨강. 그날은 빨간색이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피로 물들였다. 조선이 교린의 의미로 일본에 열어준 삼포와 상경로를 일본은 오히려 살상에 이용하는 배은(背恩)을 저질렀고, 그 잔혹성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부모와 자식을 죽인 일본을 어찌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침 내가 지원하던 나의 날도 빨간색이었다. 불구대천(不俱戴天), 같은 하늘아래 산다는 고통. 어쩌면 이 여행에서 답을 얻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하였다.
보라. 첫날 도착한 쓰시마의 색깔이다. 통신사가 일본으로부터 잘 대접받은 것처럼 우리도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식사·숙소·이동 모두 다 좋은 것으로 제공받았지만, 배에서 내려 차로 한·일의 운명처럼 굽이굽이 펼쳐진 쓰시마의 길을 하루종일 다니고 나니, 가만있어도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고 보라색 다크써클이 한껏 내려왔다. 이런 길을 통신사들은 몇 날, 몇 달씩이나 다녀야 했으니 이 고된 길을 오간 조선인에게나, 그 긴 기간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하였던 일본인에게나 ‘평화는 절대 공짜가 아니었구나’ 생각되었다. 한편 그런 통신사를 조공사로 왜곡하는 것이나, 국서를 위조한 쓰시마 도주 등이 칭송받는 것은 여간 불편하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내야 하는 평화로운 ‘일상’이란 대체 무엇일까? 머리가 복잡하고 괴로웠다.
파랑. 본토에서 보냈던 셋째, 넷째 날이다. 일본의 선선한 겨울날씨와 파란 바다, 덜 파란 하늘이 쾌청감을 주었다. 통신사들이 조류를 관찰하며 묵었던 후쿠젠지(福禪寺)의 창으로 바다를 보았을 때에는, 육성으로 탄성이 나왔다. 통신사들이 다니는 곳마다 훌륭한 글과 편액을 남긴 데에는 문예를 갖춘 통신사들을 일본에 보냄으로써 일본을 교화시키려던 조선의 의도 외에도, 일본 역시 통신사들에게 뛰어난 경관을 제공하려고 길을 닦는 등의 여러 노력을 하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런 경관 앞에서는 차마 눈을 흘길 수 없었으리라. 내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지고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고, 통신사를 보내는 어려운 결단을 한 조선의 정세와 심정도 객관적으로 헤아릴 수 있었다.
초록. 다섯, 여섯, 일곱째 날이다. 밤이 낮을 비추던 3일이었다. 일본의 방송사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온다기에 이번 탐방에 같이 참여한 동생들의 부탁으로 인터뷰 연습을 도와주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일본대학생들과의 교류도 예정되어 있었기에, 혹여 누군가가 한일 역사논쟁을 거론하게 될 때 사학도로서 가만히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여 사학과 학생들과 한일 역사쟁점에 대한 반론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학생교류는 생각보다 무척 화기애애하고 산만한 분위기여서 우려했던 역사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여독으로 피곤한 중에도 텅 빈 로비에 모여 새벽까지 공부하고 다음날 점심 식사를 성급히 한 후 식당 주차장에서 서로의 조사내용을 브리핑하던 사학과 친구들은 내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인터뷰와 역사문제 대응에 열을 올리며 지새우던 밤과, 일본학생들의 역사바로알기 동아리 활동 및 밝고 친절한 모습을 듣고 보았던 낮은, 우리 세대의 한일관계에는 새로운 싹이 날 수도 있을 것 만 같은 희망을 안겨 주었다.
노랑. 여덟, 아홉째 날이다. 동경 한국대사관과 동경문화원에서 화려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이번 여행의 가치를 공유했다. 아직도 단체카톡방은 시끌시끌하니 여행의 감동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여정에서 해답을 찾은 것일까? 완벽하진 않지만, 고뇌가 줄고 웃음이 늘었다. 엄청난 집순이인 내가 한일관계 관련한 모임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실감한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노란색이다. 언젠가 나의 삶도, 한일관계도 황금처럼 빛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안겨준 이번 신조선통신사 행사에, 함께해준 인솔자분들과 친구들, 그 외 스쳐간 인연들과 내게 참가 기회를 주신 분들께 너무도 감사한 마음과 행복감이 아직도 나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