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부터 도쿄까지, '대학생 新 조선통신사' 탐방을 마치고 2017년 12월 27일 귀국했다. 따뜻한 일본 날씨에 익숙해져 잊고 있던 한국의 매서운 바람에 깜짝 놀랐다. 새삼 느껴진 추위에, 문득 요즘 한일 관계도 매서운 추운 날씨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언어문화'를 전공하고 있는 나는 고등학교 때 한국사 과목으로 한국의 역사를, 전공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배웠다. 동그라미와 세모의 성질은 지극히 다르듯, 한국과 일본은 문화도 같은 역사를 배우는 관점도 매우 다르다. 이렇게 한국이라는 동그라미, 일본이라는 세모만을 배우고, 제3의 관점과 동그라미와 세모 중간 지점에 대해 배울 기회는 없었다. 이번 탐방은 한일 역사의 교차점과 우리는 그들을,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고자했던 노력이 있었음을 몸소 깨달은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던 여정의 첫 번째 순간은 여정의 7일차,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 방문이었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진실과 신뢰를 뜻하는 '성신교린'을 주장하며 조선통신사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조선통신사를 직접 맞이하고 배웅했다. 그가 쓴 조선외교 지침서 『교린제성』에는 '조선의 독자적인 문화와 풍습을 무시하고 일본 문화로 사고하게 되면 편견과 독단이 생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적혀있다. 이는 조선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마음으로 아메노모리 호슈의 한일 교류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또한 우리를 맞이 해주신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을 운영하는 관장님의 노력 또한 성신교린의 연장선이었다. 아메노모리의 일생을 한눈에 보기 쉬운 그림체로 직접 그려 재밌게 전달해 주신 장면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또 오래전부터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들과의 추억과 사진을 고이 간직할 정도로 현재의 교류 또한 중요시 여기셨다. 기념관 방문에서는 일본의 관점만을 내세우지 않고, 한국을 이해하고자 했던 아메노모리 호슈와 관장님의 진심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다음으로 한일 교류의 진정함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은 8일차에 탐방한 시즈오카의 세이켄지(淸見寺)다. 세이켄지는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방문했던 곳으로 사찰 본당에는 통신사 일행이 남긴 시판과 현액이 가득했다. 당시 한자 뜻이 통해 필담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조선통신사가 필담을 통해 일본에 건넨 요청으로 1711년 통신사 역관 현덕윤의 '동해명구'가 사찰내의 현판으로 걸린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 당시의 역사적 교류가 더 생생히 느껴졌다. 상호 약속과 실행을 통해 한일관계를 돈독하게 만든 흔적과 진정한 교류의 마음이, 후지산의 멋진 전경의 웅장함과 함께 기억된다.
마지막으로 한일학생 교류회는 우리 新조선통신사가 걸었던 길 중 가장 교류의 열정이 넘쳤던 순간이었다. 각 조는 우리 신조선통신사 대학생 다섯 명과 일본 간사이대학 학생 몇 명으로 구성되었다. 다섯 조는 각기 다른 다양한 주제로 한일 문화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사이에는 면을 먹을 때 일본은 소리를 내어야, 한국의 소리를 내지 않아야 예의라는 점과 같은 사소한 차이부터 교과서로만 배운 일본만의 '혼네, 타테마에'라는 큰 문화 차이까지 있었다. 한일 상호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새삼 느꼈다.
동그라미 입장에서 세모를 이해하는 관점도 그 반대의 관점도 알아야 서로를 이해하고 그 중점을 찾을 수 있다.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탐방으로 조선통신사는 한일 상호가 서로의 다른 점, 동그라미와 세모를 이해하고 그 가운데 지점을 찾고자 노력을 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위령비,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정지용 선생님 시비, 교토의 조선인 귀무덤인 미미즈카와 같이 일본 열도 곳곳에 한국의 역사가 남겨진 곳의 답사로부터는 우리 또한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고 문화를 이해해야함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관점에서, 찬바람 쌩쌩 부는 현 한일관계는 어떤 모습인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당사자분들과 그 역사를 잊지 못하는 국민의 분노를 고려하면 최근 가장 큰 현안인 '위안부 합의' 자체는 일반적인 외교문제로만 볼 수 없다. 어째서 국가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은 자,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인가. 사과의 진심을 찾아 볼 수 없거니와, 용서할지 말지의 문제는 피해 당사자들의 선택이다. 나와 국민 대다수에겐 한일의 불화로 인한 불이익의 무게보다 일제강점기 역사로 인한 상처의 무게가 훨씬 크다. 그리고 일본은 이를 모르는 듯하다. 즉 지금 일본은 한국의 동그라미를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세모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한일은 역사의 교집합이 많은 만큼 제대로 된 인식은 불가피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동그라미와 세모의 중점을 찾으려고 하니 외교 문제에서도, 여론에서도 서로 등을 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신 조선통신사 탐방은 일본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한 방안을 살피고 통찰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길은 춥고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서로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조선통신사'라는 한일 교린의 역사가 따뜻한 횃불이 되어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