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靜岡) 역 앞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고찰 호타이지는 인근의 게요인(華陽院)과 함께 통신사의 객관으로 이용되었던 사찰이다. 1719년 사행 때는 호타이지에서 통신사 일행이 점심을 들고 휴식을 했다. 당시의 제술관 신유한은 정원이 넓고 아름다웠다며 자신의 사행록인 『해유록(海游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절은 이 나라에서 제일 기려하다. 정원에는 상하의 두 연못이 있는데, 돌을 깎아 둑을 쌓았다. 머리를 들어 쳐다보면 기이하게 생긴 곳에서 폭포가 쏟아지는데, 높이가 수십척이 되고 연못으로 떨어진다. 연못 가운데 돌다리가 놓여 있고 좌우에는 기이한 꽃들이 우거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호타이지에는 지금도 정원에 향나무와 영산홍 등이 잘 가꾸어져 있고, 연못 사이로 돌다리가 놓여 있다. 하지만 신유한이 말한 폭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찰의 규모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주변 일대에 폭포가 있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찰 주위에 산은커녕 언덕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 세이켄지의 폭포와 착각한 것이 아닌가 모를 일이다. 어쨌든 호타이지에 통신사가 머물 때는 에도에서 병풍을 가져와 거실을 장식했다고 나카오 히로시(仲尾宏)가 『조선통신사 이야기』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호타이지는 순카 조다이(駿下城代)가 있어 쇼토쿠 때의 5개소 노연 중 한 개소로 지정되었으며, 가반(加番)들이 협동하여 접대했다. 호타이지와 사원의 탑두에는 세 사신과 상관 등이 들어가고 중·하관은 주변 사원에 나뉘어 숙박했던 것은 다른 조카마치(城下町)와 마찬가지였다. 호타이지에서는 통신사를 위해 일부러 병풍 15쌍을 가져와 거실을 장식했다. 교호 때 이후로는 슨푸 성 내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그 배려의 정성이 짐작된다.
호타이지 정원에는 2007년 12월에 세워진 석등 ‘평화상야등(平和常夜燈)’이 눈길을 끈다. 조선통신사 400주년을 기려 원폭 피해자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해 이 석등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이 평화의 등을 만드는 석등 기술자를 우리나라 여주 고달사(高達寺)에 보내 디자인을 익히게 하고, 다시 그를 중국에 보내 돌을 사서 조각하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