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호의 입구에 있는 오미하치만은 한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계자였던 히데요시의 조카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가 개발한 도시이다. 히데쓰구는 히데요시의 누이의 아들로 히데요시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자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많은 싸움에서 공을 세웠고, 1585년 이곳의 영주로 부임했다. 그는 백성들의 생활과 도시건설에 많은 노력을 쏟았으며, 1593년에는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관백이 되었다. 그가 특히 심혈을 기울였던 사업은 오미하치만 지역의 늪지대를 준설하고 매립하여 새로운 농토를 조성하고 수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수로는 성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의 기능도 하지만, 물자를 운반하는 운하의 기능도 했다. 히데쓰구는 이 운하를 이용하여 비와호를 왕래하는 모든 선박이 이 지역을 통과하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이 지역은 물자의 집산지가 되어 지역경제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애첩 요도도노(淀殿)에게서 아들 히데요리(秀賴)가 생기면서 그는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고, 실의에 빠져 폭정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양아버지인 히데요시에 대해 반역을 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할복자살함으로써 28세의 짧은 인생을 억울하게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