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조선통신사의 숙소는 혼세지(本誓寺)였으나, 혼세이지가 화재로 소실되자, 1711년부터는 아사쿠사의 히가시혼간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쓰시마의 번주와 통신사를 접대하는 관리들은 히가시혼간지 인근의 아사쿠사(淺草寺)를 비롯한 37개의 사찰에 분산되어 숙박하였다.
도카이지에 이른 통신사는 이곳에서 통신사 행렬을 제대로 갖추어 에도의 시가지로 진입했다. 도카이지를 떠난 통신사 일행은 오른쪽으로 도쿄만을 끼고 35리를 걸어서 에도의 숙소였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당도했다.
가장 짧을 때가 14일이고, 길 때는 40일이었다. 이 가운데 1636년, 1643년, 1655년 세 차례의 통신사는 국서전명식 이외에도 중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새로운 묘소였던 니코에 유람을 다녀오기도 했다.
히가시혼간지가 있는 아사쿠사는 지금도 그렇지만 에도의 대표적인 유흥가였고, 유곽(遊廓)이 있었다. 보통 요시와라(吉原)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동서 180칸, 남북 135칸의 직사각형의 토지에 3천여명의 유녀를 비롯하여 일상잡화와 식료품을 파는 상점과 전당포, 목욕탕 등을 운영하는 약 1만명이 운집하여 살았다고 한다. 조선통신사가 이 유흥가를 가지는 않았겠지만 에도 제일의 번화가에 통신사들의 관심은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