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조선통신사' 길 떠난 대학생 30명]
日대학생 만나 함께 퀴즈 풀어… 손짓 발짓 소통하며 가까워져
테이블마다 '단체 카톡방' 열기도
통신사 글·그림 등 흔적도 살펴
역시 젊음은 좋았다. 윗세대끼리의 벽이야 어떻든 두 나라 젊은이들은 금방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됐다.
지난 19일 저녁 일본 시즈오카 시내 센추리호텔. 한국 '대학생 신(新)조선통신사' 30명과 일본 시즈오카현 7개 대학생 30명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서먹함은 잠시였다. 사회자가 양국 학생을 상대로 각각 퀴즈를 내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겨울 맞아 김치를 만드는 것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나?' 시즈오카 현립 대학 3학년 요네자와 미유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김장!" 장내에 박수가 터졌다. 사회자가 일본 학생들에게 또 문제를 냈다. "한국 음식 중 빨갛지 않은 것을 세 개만 든다면?" 여기저기서 마이크를 잡으려고 뛰어나갔다. "김밥, 잡채, 삼계탕, 순대…."
지난 19일 저녁 일본 시즈오카 시내 센추리호텔. 한국 '대학생 신(新)조선통신사' 30명과 일본 시즈오카현 7개 대학생 30명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서먹함은 잠시였다. 사회자가 양국 학생을 상대로 각각 퀴즈를 내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겨울 맞아 김치를 만드는 것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나?' 시즈오카 현립 대학 3학년 요네자와 미유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김장!" 장내에 박수가 터졌다. 사회자가 일본 학생들에게 또 문제를 냈다. "한국 음식 중 빨갛지 않은 것을 세 개만 든다면?" 여기저기서 마이크를 잡으려고 뛰어나갔다. "김밥, 잡채, 삼계탕, 순대…."
한국 학생들을 향한 문제는 까다로웠다. '1607년 1차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왔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답례품으로 받아간 것은 무엇인가' '시즈오카현에는 신칸센이 서는 역이 몇 개인가'…. 학생들은 옆자리 일본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손짓 발짓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열렸다.
국민대 4학년 정준석 학생은 옥색 한복 두루마기를 의젓하게 차려입고 판소리 '춘향가'를 뽐냈다. 일본 젊은이들이 전통춤을 선보이고 두 나라 학생들이 무대에 나가 함께 어울리면서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테이블마다 10명가량 섞어 앉은 한·일 학생들은 즉석에서 카톡방을 열었다,
서울대 3학년 천화영 학생은 일본 학생들과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주제로 필담을 나누었다. 정이 깊다, 열정적이다, 음식이 맵다, 우수한 사람이 많다, 우리와 닮았다…. 저마다 가진 한국에 대한 느낌들이 쏟아졌다.
국민대 4학년 정준석 학생은 옥색 한복 두루마기를 의젓하게 차려입고 판소리 '춘향가'를 뽐냈다. 일본 젊은이들이 전통춤을 선보이고 두 나라 학생들이 무대에 나가 함께 어울리면서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테이블마다 10명가량 섞어 앉은 한·일 학생들은 즉석에서 카톡방을 열었다,
서울대 3학년 천화영 학생은 일본 학생들과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주제로 필담을 나누었다. 정이 깊다, 열정적이다, 음식이 맵다, 우수한 사람이 많다, 우리와 닮았다…. 저마다 가진 한국에 대한 느낌들이 쏟아졌다.
조선일보사와 외교부(주일 한국 대사관)가 주최하는 '신조선통신사'는 지난 13일 배로 부산항을 출발해 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 상륙했다. 시모노세키~히로시마~후쿠야마~오사카~교토~히코네~다카쓰키~시즈오카~하코네의 통신사 여정을 그대로 밟아 20일 목적지인 도쿄에 입성했다. 조선왕조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차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다. 한 번에 300~500명, 왕복 1년 가까이 걸리는 대행렬이었다. 처음 보낸 때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이 전쟁 후의 증오를 무력이 아니라 선린·교류로 극복한 빛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통신사가 오간 200년 동안 두 나라는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통신(通信)'이란 말뜻 그대로 두 나라 모두 '믿음으로 통한다'는 의지와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조선통신사'가 지나온 일본의 마을 마을에는 400년 전 선조의 전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해안 도시 도모노우라의 후쿠젠지(福禪寺)에는 조선통신사가 이름 짓고 글씨를 써준 현판들이 일행을 맞았다. 히로시마 근처 한 마을에는 현지인들이 조선통신사를 접대한 진기한 상차림이 재현돼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교토·히코네·시즈오카의 절 주지 스님들은 통신사가 남긴 글씨와 그림을 보물처럼 간수하고 있다가 꺼내 보여주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한 번 맞아 접대하는 데 막부 1년 예산에 해당하는 거금을 썼다고 한다. 조선통신사가 이뤄진 배경에는 일본의 대륙 문화에 대한 갈증과 함께 그들이 가진 든든한 경제력도 작용했다. 막부가 쓰러지고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한·일 관계는 파란과 대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학생들을 인솔한 손승철 강원대 교수는 "17~18세기는 한·일 양국이 통신사를 교환함으로써 갈등을 외교로 관리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대마도에서 '신조선통신사' 일행을 맞이한 이준규 주일 한국 대사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서로가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스무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은 조선통신사의 현재적 교훈을 되새기는 마음의 견문록을 쓰며 22일 귀로에 오른다.
'신조선통신사'가 지나온 일본의 마을 마을에는 400년 전 선조의 전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해안 도시 도모노우라의 후쿠젠지(福禪寺)에는 조선통신사가 이름 짓고 글씨를 써준 현판들이 일행을 맞았다. 히로시마 근처 한 마을에는 현지인들이 조선통신사를 접대한 진기한 상차림이 재현돼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교토·히코네·시즈오카의 절 주지 스님들은 통신사가 남긴 글씨와 그림을 보물처럼 간수하고 있다가 꺼내 보여주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한 번 맞아 접대하는 데 막부 1년 예산에 해당하는 거금을 썼다고 한다. 조선통신사가 이뤄진 배경에는 일본의 대륙 문화에 대한 갈증과 함께 그들이 가진 든든한 경제력도 작용했다. 막부가 쓰러지고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한·일 관계는 파란과 대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학생들을 인솔한 손승철 강원대 교수는 "17~18세기는 한·일 양국이 통신사를 교환함으로써 갈등을 외교로 관리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대마도에서 '신조선통신사' 일행을 맞이한 이준규 주일 한국 대사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서로가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스무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은 조선통신사의 현재적 교훈을 되새기는 마음의 견문록을 쓰며 22일 귀로에 오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1/20161221001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