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를 통해 참된 지성인의 자세를 배우다
제4회 新 조선 통신사 답사는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나에게 조일(朝日) 외교사와 일본 역사, 문화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8박 9일간의 여정 중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 중 가장 인상을 남긴 것은 지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자세에 대한 성찰이 아닌까 싶다.
상위 25개 대학의 학생대표로 구성된 新 조선 통신사는 17, 18세기 조선 통신사의 에도(지금의 도쿄)로의 여정 길을 따라 8박 9일간 통신사와 관련된 주요 유적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솔 교수, 또는 그곳의 일본인 선생님, 주지스님의 조선 통신사와 조일 문화교류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대표들이 올바른 한일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것이 바로 新 조선 통신사 답사의 목적이다.
이 답사는 한국의 대외관계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견문을 넓혀 줄 엄청난 기회였고, 이에 따라 나는 답사를 통해 최대한 많이 배우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유적지를 방문하면 할수록 내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리학자 출신인 조선의 통신사들이 일본 승려들과 시문(詩文)을 주고받는 등 활발한 문화교류를 했다는 것이다.
16세기,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 사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조선 지배층은 대체로 일본을 성리학적 문명권에서 벗어난 ‘오랑캐의 영역’으로 인식했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이 일본에 대한 전쟁대비를 소홀히 한 것에는 지배층이 일본인을 그저 오랑캐라고만 여긴 편견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탐방 전 나는 통신사들 또한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일본인과 교류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新 조선 통신사 탐방 중 들은 한 스님의 말씀은 오히려 내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탐방 나흘째 新 조선 통신사 일행은 교토에 있는 지쇼인(慈照阮)이란 사찰을 방문했다. 지쇼인은 에도시대 당시 대(對)조선 외교업무를 담당한 승려들을 양성한 동시에, 조선 통신사들이 교토를 방문했을 때 숙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 통신사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곳 주지스님은 통신사와 지쇼인 승려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꺼내 보이시며, 우리 新 조선 통신사 일행에게 지쇼인에서 활발한 조일 문화교류가 일어났다고 설명하셨다. 설명이 끝나자 나는 성리학자와 불제자 출신으로서 사상적 배경이 크게 차이 나는 조선 통신사와 지쇼인 승려 양측이 어떻게 서로 간에 사상적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스님은 양측은 조일 양국을 대표하는 ‘탑클래스 지성인’으로 그들에게 있어서 각 측의 사상적 차이는 전혀 문제되지 못했다고 말씀하였다.
스님의 이 답변은 그동안 참된 지성인의 자세를 고민해 왔던 나에게 있어서 큰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었다. 통신사는 성리학자로서, 성리학적 세계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본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일본 지식인들과 교류를 할 때는 그들의 학문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높이 사, 일본인은 오랑캐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필답창화(筆答唱和)에 임했다. 즉 통신사는 조선의 ‘탑클래스 지성인’으로 적어도 학문과 교류에 대한 의지가 있는 일본인들을 ‘왜란 때 나라를 유린한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부류로 정형화 하지 않을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지쇼인에는 조선통신사가 남긴 유물이 소중히 간직되어있다. 통신사의 유물을 모아 만든 병풍.
불행했던 과거 역사, 그리고 현재도 빈번히 자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으로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은 편견을 가지고 보기 쉬운 대상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빈번히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을 정치, 역사와 연관시켜 보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300여 년 전의 조선 통신사는 명분론(名分論)에 충실한 성리학자이면서도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임진왜란이란 아픈 역사를 기억했지만, 학문적 교류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일본인들을 하나의 학생이자 학자로 인식했다. 또한 통신사는 일본의 번화한 도시와 여유로운 도시인들의 모습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등 일본을 ‘원수의 나라’로 정형화시키지 않는 개방성도 보였다. 결국 이러한 통신사가 가진 지성인으로서의 개방성,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조일 양국은 200년간 유래 없는 평화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통신사가 보여준 ‘탑클래스 지성인’으로서의 태도는 현재 한일 지식인, 대학생뿐만 아니라 양국의 국민들이 모두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비록 아픈 과거를 직시하더라도 양국 국민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인식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앞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밑거름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