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류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일본을 답사하며 조선통신사의 유물들을 살핀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들뜨는 일이다. 강의실에서 슬라이드를 넘기며 유물을 아이덴티파이하는 것과는 달리, 현장을 직접 답사할 때에는 유물이 뿜어내는 분위기와 더불어 유물과 그 유물이 관람자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볼 수 있다. 유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작품의 연대를 외우고 소장처를 파악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당시 시대상황을 잘 파악하게 해 준다.
근세한일교류사의 중심이 되는 조선통신사는 아직 그 정체가 모호하다. 조선통신사는 한국 측의 주장대로라면 선진문물을 전달해 준 문화사절단이며, 일본 측의 주장대로라면 쇼군이 바뀔 때마다 조공을 바치러 온 조빙단인 것이다. 시모노세키부터 도쿄까지 조선통신사가 지나갔던 길을 따라 걸으며, 아직 조선통신사가 무엇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시 조선과 일본의 평화에 대한 의지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 유물들을 관리하는 후손들의 마음도 그 때와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誠信을 강조한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의 관장님은 호슈의 일생과 조선통신사 행렬을 하나하나 그려 전시하셨고, 한국의 대학생인 우리에게 호슈의 초상화를 그릴 것을 부탁하셨다. 소안지의 스님께서는 당시 조선통신사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소안지를 연구하여 한국어 자료를 직접 쓰고 강의까지 하셨고, 아카마 신궁의 신관께서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자료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 주셨다. 박물관에서 일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역사와 예술의 소중함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는 나에게 그 모습은 참 감동적이고 감사한 것이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 가끔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재일교포 사업가인 고 정조문 선생님께서 설립하신 고려미술관은 내게 다시 용기를 주었다. 간송미술관처럼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사비를 털어 일본 현지의 한국 문화재들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절로 굳건해졌다. 우리가 갔을 때는 조선통신사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한국인이 세운 일본의 박물관에서 한일교류의 증거를 전시한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문화유산 전시를 통해 단순한 역사적 사실 습득을 넘어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게 돕는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현 고려미술관의 관장님께서는 아버지의 유지를 물려받아 일본의 한국 문화재들을 사 모아 보수하시고 있다.
평상시에는 만나기 어려운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을 만나 친분을 쌓은 것도 참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이 모여 한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던 것, 또래 모두가 하는 고민들을 밤새도록 나누었던 것 매 순간 순간이 소중했다.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도 있고, 미래에 함께 연구할 동료가 되기로 다짐한 학우도 생겼으며, 친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공부하기 싫은 밤 불러 같이 술 한잔 할 정도로 친해진 인연도 있다. 일본과 한국의 외교갈등 문제라던가 역사왜곡의 문제같이 중요한 문제들도 있는데, 사사로운 인연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색깔로 반짝이는 청춘들이 모여 8박 9일 동안 답사를 하며 한 뼘 더 자랐으니, 그 빛이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반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