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결국 즐거운 것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를 다녀오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조선통신사가 오랜 기간 12번이나 왕래 했던 이유였다. 실제 조선통신사는 전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607년 회답 겸 쇄환사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여 1811년까지 12번을 왕래했는데, 온 나라를 휘저은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국가에서 염치불구하고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던 이유와 그에 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우선이라고 하며, 경제적인 이유와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탐방을 통해 조선통신사가 한·일 양국에 기분 좋고 재미있는 역사의 단면으로 남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문화로 융성한 국가는 시대를 초월해서 항상 주변국과 후대 국가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중국의 생활과 언어, 문화를 정립하여 대다수의 중국인을 ‘한’족으로 불리게 만든 한나라와 유럽의 이후 모든 문화와 법, 제도의 근간을 이룩한 로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15세기 초반 일본은 군사력과 경제력은 조선보다 우월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문화인식으로는 조선이 문화적으로 더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끈질긴 요청과 당시 지역사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국서를 조작한 쓰시마 도주의 결단으로 조선통신사의 파견이 결정됐다.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에 전시된 조선통신사 행렬 모형.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유물은 외교, 여정, 문화교류의 333점 중 가장 많은 기록은 문화교류 부분 147점이다. 즉 초반 몇 번을 제외하고 통신사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문화교류인 셈인데, 이중 가장 일본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말을 타고 여러 기예를 펼치는 ‘마상재’였다. 당시 일본 국가의 1년 예산에 달하는 큰돈을 들여서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초청하는데 일본의 민중들의 불만이 들끓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조선의 K-POP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마상재, 한시와 같은 문화콘텐츠가 아니었을까.
실제 일본 시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한국의 요소는 문화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는데, 소위 ‘욘사마’라고 불리던 배우 배용준이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인기는 다소 시들했다. 하지만 요즘은 콘텐츠의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SNS 등의 매체를 통해 문화를 향유하는 속도가 비슷하다. 즉 엇박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한국의 아이돌 가수는 일본에서도 똑같이 매우 인기가 높다.
뉴스에서는 혐한 등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번 탐방을 통해서 일본인은 한국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느꼈다.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시즈오카의 오뎅골목에서 만난 손님의 유창한 한국어에 놀랐으며, 끊임없이 한국의 정치와 문화에 관심을 나타내는 일본인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과 통하며 친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매개체는 단연 문화콘텐츠였다
이제는 일본을 대하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국가라는 말로 오랫동안 불렸는데, 사실 좋은 쪽과 나쁜 쪽 모두에서 가깝다. 오사카 번화가에서 가장 많이 들리던 외국어는 한국어였고, 유명 아이돌 가수의 일본 돔 투어는 항상 매진이다. 지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치욕과 반목의 역사 이외에 상호 교류의 역사도 잊지 말고 조금 더 밝게 일본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