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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시작은 의문과 함께였다. ‘옛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밟는 일정들, 그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의심했다. 또한, 9일이라는 시간 끝에 나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행 가기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지만, 역사와 관련해서는 마음을 좋게 먹기 힘든,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 대한 생각이었다. 지금의 위태로운 한일관계의 8할은 일본의 잘못이고, 그들이 과거의 행적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해결될 일이라고만 믿어왔던 나였다. 그랬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떠났다. 사전 지식은 전무했고, 초반의 답사지들에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설명을 들어도 지금의 나와는 동떨어진 일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저 역사를 배우지 않은 지 오래되어서, 관련 전공이 아니라서 와닿지 않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던 나였다.

 

생각이 바뀐 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했던 2일 차부터였다. 원폭돔, 조선인 위령비, 기념관에서 관련 사진들을 보면서 ‘20세기 아시아 건축사교양 수업에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배웠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전범국에 대한 공감이 아닌, 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폭 피해를 입은 일본인, 그리고 징용으로 강제노역을 하던 중 피해를 당한 조선인들에 대한 애달픈 감정이었다. 또한, 국가 간에 갈등이 생기고 대화가 단절되었을 때 일어날 일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막부 시절 한일관계에서 조선통신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조선통신사는 나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순간순간 교수님의 설명에 집중하고, 유물과 유적의 의미를 되새기려고 노력했는데, 가장 감명 깊었던 장소는 고려박물관이었다. 조국의 귀중한 역사가 잊히지 않을 수 있게 사비를 투자해가면서 유물 하나하나를 모아서 박물관에 전시했던 정조문씨의 열정에 감탄했다. 역사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 장소였던 것 같다.

 

원폭돔.png

   원폭돔. 훼손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9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랐다는 표면적인 일 이상으로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탐방 끝에 역사는 그저 옛날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정의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그 역사의 가치 또한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사학 전공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며 스스로 눈가리개를 한 채 유적지를 둘러보고 설명을 흘려들었던 초반의 나 자신의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그램 신조선통신사는 자칫하면 역사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는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 역사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갖고, 그를 토대로 발전을 향해 노력하게 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관련한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느낀다.

 

덧붙이자면 사실,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했지만, 아직도 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감이 오지 않는다. 무턱대고 지난 일을 덮어두는 것도, 그것을 이유로 일본에 적개심을 갖는 것도 틀린 답이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어느 한 나라만 노력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두 나라 모두가 소통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선에서는 조선통신사를 보내고, 일본이 모든 비용을 대면서 환대하면서 서로의 국왕, 막부 장군이 소통했던 조선 시대처럼 두 정부가 서로 노력해 앞으로의 한일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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