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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김진우 광주과학기술원(전기전자컴퓨터공학)

부산에서 출발하여 대마도를 거쳐 일본의 남부에서 에도(도쿄)까지 - 옛 조선통신사가 6개월에서 1년여에 걸쳐 다녀온 그 긴 길을 우리 ‘제2회 대학생 신조선통신사’ 일행이 9박 10일 동안 각기 다른 대학에서, 다른 전공을 가진 30여 명의 대학생들과 서로 친목을 다지며, 또 일본 시즈오카 현의 대학생들과 교류도 하며 답사하였습니다

‘제2회 대학생 신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서 직접 조선통신사들이 머물렀던 곳을 도보, 배와 기차 그리고 버스를 이용하여 약 2,000여 km를 이동하였습니다. 시모카마가리의 고치소이치방칸에서는 통신사 일행이 먹었던 음식들과 조선통신사 행렬이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손승철 교수님께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에 가서 대화한 것들이 1개월 만에 책으로 출간되어, 이를 에도에서 돌아오던 통신사 일행이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과 조선통신사 일행이 오가는 것이 흔하지 않다 보니 이와 비슷하게 꾸민 축제를 개최하였다는 사실을 들으며 그 옛날 일본에서 조선통신사가 갖던 문화적 파급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2회 대학생 신조선통신사 일행.
또 이국의 땅에서 병에 걸려 조선에 남겨진 가족을 그리다 죽은 김한중의 묘비를 보며 지금에서야 교통이 발달하여 쉽게 오갈 수 있는 일본이지만, 그 당시엔 힘들었을 조선통신사 일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다른 많은 국가가 자신들의 우월성이나 선민사상을 강조하며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했지만, 조선과 일본은 이 조선통신사를 이용해 200년간 선린외교를 펼치며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웠습니다. 이러한 우호의 역사를 길이 남기고자 지금의 한일 양국이 협조하여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신청을 마쳤다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회 대학생 신조선통신사 일행이 조선통신사를 담당한 전문 통역관인 아메노모리 호슈를 기리는 아메노모리호슈암에서 손승철 교수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 후기 조선통신사의 재개는 ‘회답 겸 쇄환사’를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임진왜란이 끝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습니다. 백성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 어떨지는 사료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시적인 계급 구조를 가진 왕권 국가인 조선에서는 이를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일본에 왕릉 도굴범의 압송을 조건으로 국교 회복을 하자고 하였는데, 실제로 일본에서 보내온 것은 가짜 도굴범이었고, 이를 조선 측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위안부 및 역사 왜곡 문제, 영토 분쟁 등으로 인해 시민의 반일 감정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옛 조선이 했던 대로 시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로 한일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현 대한민국에서는 있으면 안 되는 일이고, 또 이미 그러한 불통의 정책이 어떻게 시민에게 다가왔는지 지금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얼어붙은 현재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번 조선통신사 답사여행이 ‘제2회 대학생 신조선통신사’ 일행 모두에게 던져준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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