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오기 전에는 통신사에 대해 단순히 조선과 일본의 교류수단으로만 생각했고 그 의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처음 쓰시마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외교나 교류는 말은 참 어렵게 들렸다. 먹구름이 끼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던 탐방의 시작, 9일간의 여정동안 한일관계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했다.
쓰시마의 원통사부터 시모노세키의 아카마신궁까지 유적의 이야기를 듣고 선조들이 지나간 흔적을 밟으며 역사를 이해했다. 원씨와 평씨의 전쟁에서 죽은 안도쿠천황을 기리는 아카마신궁에서 통신사가 천황의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시문을 보았다. 당시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며 글을 써내려 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후 히로시마에 방문하여 한국인 위령비에서 헌화를 하고 평화 기념관에서 당시의 상황과 피해의 심각성을 보았다. 전쟁이라는 맹목적인 수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직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가. 정부의 이기적인 선택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했고 원폭을 투하했던 시간이 ‘8:15’라는 점에서는 기분이 묘했다.
여정의 중반에 달하며 통신사가 맛있는 음식을 즐겼던 고이소이치방칸, ‘일동제일형승’이라는 말에 걸맞는 그림같은 풍경을 선사한 도모노우라를 지나 오사카민단을 방문하여 통신사의 유네스코 등재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고 2017년에 등재된다면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공감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가깝지만 긴 시간동안 냉전상태를 유지해왔다. 400년 전 통신사를 파견할 때만 해도 양국은 이를 통해 200년 동안 대등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나갔다. 이들은 특별한 케이스였을까, 현재의 한일 관계에서는 이러한 좋은 방안을 모색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어쩌면 양국이 서로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해서 지금 이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 서로 양보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대등한 입장을 가질 순 없는 것일까. 9일 동안 양국 평화의 상징이었던 통신사에 대해 배우고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여정이 계속 될수록 역사에 대한 나의 책임감은 무거워졌다. 통신사와 관계된 것을 비롯한 많은 유적, 유물들이 본 모습을 지키며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몇 백년이 지난 시문과 형판들이 제 모습을 유지하며 숨쉬고 있다는 것에 스님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기록유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역사의 후손으로써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