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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정다원 (서강대 사학과)

2학년이 되기 전, 이번 겨울방학에는 여행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1월 3일 밤에 우연한 기회로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신조선통신사’라는 일본으로 떠나는 역사 답사를 알게 되었다. 항상 일본을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18일에는 함께 가는 분들과 한자리에 모여서 인사도 나누고 조 편성도 하는 등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 매우 많이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모이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굳어 있었는데, 우연히 옆에 앉은 박재연 언니와 말을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8박 9일 동안 함께 답사를 떠나주시는 손승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들과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을 이어가는 방법 등을 배우면서 많은 기대와 배움을 얻고 집으로 돌아왔다.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그곳에서부터 옛 조선통신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배를 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고 신칸센을 타기도 하면서 일본 곳곳에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따라갔다. 때로는 진지한 내용을 배우기도 하고, 눈이 호강할 정도로 장관인 장소에 가기도 하고, 엄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까지 알차게 8박 9일을 일본에서 보낼 수 있었다. 옛 조선통신사가 된 것처럼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았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수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교수님의 강의는 정말 대학교 강의실에서 듣는 강의들과는 다르게 다가왔고, 조금 더 집중하고 기억에 오래 간직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았다. 또한 이동하는 버스에서는 다음에 도착할 장소와 관련된 영상을 보면서 예습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로 이렇게 한 학기를 보낸다면 2학년 1학기의 학점은 수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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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통신사 일행이 들른 히로시마에서 함께 묵념하는 모습

이렇게 역사적 배움이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일정 중간마다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경관이 보이는 장소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어떤 곳은 옛 조선통신사들이 보던 곳과 다르게 변해 장관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명관이었다. 그곳에서 평생 간직할 기념촬영도 하고 사람들과 많은 사진을 찍었다. 또한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답사지로 떠났던 순간은 다리를 힘들었을지라도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 경로였다. 내 옆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내 주위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답사 경로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였지만 직접 걸어가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었다. 

때로는 엄숙하기도 하였다. 히로시마에서는 평화공원에서 무고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희생에 슬프기도 했고,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을 하니까 너무나도 슬펐다. 또한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묵념하면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한국인 중에서 희생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나에게 매우 많이난 실망을 하였다. 묵념을 하면서 계속 죄송하다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히로시마를 떠났다. 그 이외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으나 일본인들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다가 눈을 감으신 조선통신사 소동 김한중의 묘비 앞에서도 슬픔을 느꼈다. 나는 8박 9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도 가족들이 엄청 그리웠는데, 아픈 몸으로 고국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가족들을 그리워했을 김한중이 불쌍하였다. 이런 김한중을 위해 마을의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병이 낫도록 정성을 다했다는 일본인들의 마음씀씀이에도 놀랐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마음과 태도가 어느 상황에서든 타인과의 관계를 갖고 탄탄하게 유지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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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통신사 일정 중 교회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포즈를 취했다.

이러한 경험 외에도 일본에서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항상 나는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는 것을 절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교토 조형대학과 오사카 사범대학에서 있었던 두 번의 교류회에서 처음 만나고 다른 언어를 쓰는 일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교토 조형대학에서는 통역하는 사람이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 친해져 미가의 도움을 받아 마링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헤어질 때 배웅도 받고 나중에 한국에 오거나 내가 일본에 왔을 때 연락해서 만나고 싶다는 의사도 혼자 전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어는 아니었지만 바디랭귀지와 짧은 영어와 간간이 한국어를 쓰면서 마음으로 내 뜻을 전하고 그분들도 이해를 해주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사카교육대학에서는 한국어를 일본어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한 루나 언니를 만나서 카톡을 하고 헤어지고도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언어를 쓰고, 내가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아 단 한 분과도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용기를 내고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고 시도를 하니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니 이제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두려움을 조금은 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추억 이외에도 이번 여정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국에서 대학생이라는 공통점 하나만 있는 30명이 단기간에 친해지고 헤어질 때 아쉬워서 서로 울고 위로하며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여행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했다. 같이 탐방을 간 언니와 오빠들은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서로 주고받는 편지 속에는 애정이 넘쳐나고, 친구들은 동갑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끈끈했던 것 같다. 

이 여정을 돌아와서 내가 받은 선물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에서 신 조선통신사가 되어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역사적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과, 31명의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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