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청년 新조선통신사’… 反日 넘어 미래를 보다
코로나로 중단된 후 첫 행사 재개
오사카·시즈오카=김지원 기자
2023.07.20.
17일 일본 시가현 히코네 시(市)에 있는 절 '소안지'에서 다케우치 신도 주지스님이 청년들에게 '조선고관상'을 소개하고 있다. 소안지는 통신사 일행의 총 책임자였던 '정사'가 히코네를 찾았을 때 머문 숙소로, '조선고관상'은 정사의 초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조선일보
“과거 조선통신사가 행차한 길에는 각계 각층의 일본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조선인과 교류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있었지요. 지금도 그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7일 일본 오사카 역사박물관에서 오사와 겐이치 관장이 그림 한 점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말하자, 해설을 듣던 한국 청년 17명의 눈이 반짝였다. 가리킨 그림은 일본 풍속 화가 하나부사 잇초가 1711년 행렬을 그린 ‘조선통신사 소동도(小童圖)’. 당시 일본을 찾은 조선통신사와 동행한 소동이 말 위에 앉은 채 일본 주민에게 붓글씨를 써주는 장면이 담겼다. 조선 왕조가 보낸 대규모 외교·문화 사절단인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얼마나 큰 관심을 끌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의 문물을 향한 배움의 열망도 엿보인다. 겐이치 관장은 “(조선통신사처럼) 양국 젊은이들 사이에 더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열고 생각을 넓혀 서로를 더 알아가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사와 외교부(주일 한국 대사관)가 공동 주최한 ‘청년 신(新)조선통신사’가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일본 열도를 탐방하고 있다. 지난 13일 부산에서 배로 출발해 시모노세키·히로시마·후쿠야마·오사카·교토·시즈오카 등을 거쳐 오는 21일 도쿄에서 여정을 마친다. 코로나로 인해 2019년 7월을 마지막으로 행사가 중단된 이후 4년 만에 재개됐다. 당시에는 국내 일각에서 ‘노 재팬(NO JAPAN) 운동’을 띄우는 등 양국 감정이 악화한 바 있다. 올해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답사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양국 협력 관계가 정상화돼 기쁘다” “한국에서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지난 18일 방문한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의 히라이 시게히코(78) 관장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만남 등을 통해 한일 관계가 더 좋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는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 학자다. 조선어에도 능통했던 그는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진실로 교류해야 한다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을 주창했다. 조선통신사 일행을 수행하기도 했다.
과거 통신사가 머물렀던 교토의 암자 ‘지쇼인’에서 주지 스님의 부인 히사야마 준코(80)씨가 “지난 3년간 한국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과거 통신사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점이었던 히로시마에서는 임시흥 한국 총영사가 청년들과 만났다.
답사에 참여한 손예나(24·성균관대 소비자학과)씨는 “그동안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웠지만 조선통신사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처음”이라며 “곳곳에서 통신사와 일본인들이 교류했던 흔적을 볼 수 있어 뜻깊었다”고 했다. 함상훈(25·서강대 일반대학원 경영학과)씨는 “한일 양국이 진실된 마음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했던 아메노모리 호슈의 말대로 양국 관계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신조선통신사’를 인솔한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는 “조선통신사는 약탈과 전쟁의 시대를 공존과 평화의 시대로 바꾸는 중대한 역할을 했다”며 “이번 답사를 계기로 우리 청년들도 양국 간 평화와 선린의 정신을 구현하는 주역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