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공통점 찾으면 우호의 길 보일 거예요"
조선일보 오사카·교토=김한수 기자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답사단
시모노세키부터 도쿄까지 9일간 당시 조선통신사 루트 따라 탐방
"1711년 8차 통신사 때 막부는 접대 규모를 대폭 줄이도록 지시했어요. 비용 문제와 함께 일본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자부심도 있었지요. 이렇게 정치는 압력을 가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일반인과 지식인들의 교류 열기는 더욱 뜨거웠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대학생 신(新)조선통신사' 참가 학생 25명을 맞은 정희두 대표이사는 "한·일 관계가 멀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조선통신사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 미술관에서 조선통신사 일행이 벌였던 말타기 묘기를 그린 '마상재지도'와 조선통신사 행렬을 표정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통신사행렬도'를 볼 수 있었다. 모두 조선통신사에 대한 당시 일본 사회의 열광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작품들이다.
일본 교토 지쇼인 주지 히사야마 류쇼(오른쪽 서 있는 사람) 스님이 신조선통신사 대학생 탐방단에 병풍에 붙은 1711년 조선통신사의 글과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사와 외교부(주일 한국 대사관)가 주최하는 '대학생 신조선통신사'가 조선통신사의 루트를 따라 일본 열도를 탐방하고 있다. 지난 10일 부산에서 배로 출발한 '신조선통신사'는 시모노세키~히로시마~후쿠야마~오사카~교토~히코네~시즈오카를 거쳐 18일 도쿄에서 여정을 마친다. 이번 탐방에서 '신조선통신사' 일행이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도 방문해줘서 고맙다" "이런 때일수록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왕조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외교·문화 사절단. 한양에서 에도(도쿄)까지 한 번에 300~500명, 길게는 왕복에 1년 가까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7년에 걸친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0년도 안 돼 시작된 통신사는 양국 사이의 증오를 선린 교류로 풀어 200년 평화 시대를 열었다.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극진히 환대했다. 숙소로 지정된 사찰에선 육류가 포함된 식재료 운반을 위해 새로 문을 내고 승려들은 이 기간 절을 비워줬을 정도라고 한다. 통신사 수행원이 말을 탄 채 일반인에게 글을 써주는 그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선 조선 문화에 대한 갈증이 컸다. 20~30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 조선통신사는 당시 일본인들에겐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특별한 볼거리이기도 했다.
'신조선통신사'가 방문한 길목엔 그 선린의 역사가 고이 간직돼 있었다. 수려한 풍광 앞 건물엔 250~300년 전 조선통신사가 이름 짓고 글씨 써준 편액(扁額)이 그대로 걸려 있었고, 통신사 일행이 묵었던 사찰엔 통신사가 남긴 글과 그림이 보물로 비장(祕藏)돼 있었다. 조선통신사의 역사는 2017년 뜻깊은 결실을 맺었다. 한·일 양국의 조선통신사 유물 333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함께 등재된 것.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추진한 결과이기에 더욱 뜻깊은 사건으로 평가됐다.
지난 12일 오후 오사카 간사이대학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교류회는 만남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첫 만남이었지만 양국 대학생들은 금세 친구가 됐다. 10명씩 조를 이뤄 즉석 주제 발표까지 했다. '저출산 고령화' '세계유산 등록과 문화재 관리' 등 주제를 놓고 일어와 영어를 섞어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지고 토론하며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임은경(경북대 농업경제학과) 학생은 "서로 다른 점을 찾으면 반목과 질시가 생기지만 공통점을 찾으면 우호의 길이 생길 것 같다"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그 교훈"이라고 했다. 신영수(서울대 동양사학과) 학생은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시기여서 솔직히 이번 일본행이 부담되기도 했었다"며 "대학생, 젊은이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이해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조선통신사'를 인솔한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는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을 겪은 한·일 양국이 믿음으로 통했기에 가능했다"며 "양국 관계를 외교로 관리하며 전쟁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바꾼 조선통신사의 지혜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