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과 유적은 역사를 증언한다>
통신사의 흔적이 남겨진 많은 절과 신사를 방문하여, 통신사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지켜주신 많은 분들과 교류하고 소통한 경험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역사는 유물과 유적을 낳고, 유물과 유적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처럼 한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333건의 조선통신사 관련 세계기록유산 등재 유물들은 앞으로도 양국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친선 우호의 역사가 있었음을 증언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 양국민이 다시 한 번 선린우호의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지를 갖자는 공통된 인식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한일 관계는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기도 했습니다.
시즈오카현 세이켄지(淸見寺)에 남아있는 조선통신사의 시문
<400년전 임진왜란과 100년전 식민지 역사의 직교>
이번 탐방은 조선통신사의 길을 되짚어 가는 역사 탐방이었지만, 과거 통신사가 갔던 길만을 되짚어 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통신사가 방문하고 여러 시문을 남겼던 사적지를 제외하고도, 근현대 한일관계사와 관련한 여타 사적지들을 방문하였습니다. 가령 청일강화기념관,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 정지용 시비를 답사하며 일제 강점기 시기의 비통의 역사를 눈 앞에서 마주하였고, 한국민단의 재일 한인 자료관, 고려미술관을 답사하며 해방 후의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재일 한인들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된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겪고 난 후 의심과 반목을 극복하고 200여년간 통신사가 파견되어 지속된 평화 우호의 시대의 흔적들은 식민지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들과 만나 해방 이후 한일관계에서 마주하고 있는 마음속의 깊은 불신 속에서 다시금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어떤 해답을 찾아갈 수 있을지를 능동적으로 질문토록 만들었습니다.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의 윤동주 시인 시비
<선입관은 본질을 흐린다>
8박 9일동안의 긴 여정 동안 일본에 대한 선입견 역시 조금씩 깨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방일단을 통해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것으로 처음 방문하였었지만 일본의 문화를 깊게 이해할 기회를 얻기 보다는 일본 본토와 원주민 아이누족간의 교류의 역사 자세히 알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았었습니다. 통신사가 갔던 길을 따라 가는 것은 한일 우호 교류의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본 구석구석의 지리와 문화를 찾아 나서는 탐사이기도 했습니다.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를 포함한 츄코쿠 지역에서부터 간사이, 도카이 지역을 거쳐 간토 지방의 도쿄까지 가는 동안 바라본 창 밖의 풍경과 마주한 새로운 도시의 풍경은 일본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러하듯이 일본이라는 국가는 저에게도 이웃을 이해하려는 역사적인 감수성이 없고 침략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고 과거사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불구대천의 원수” 였습니다. 하지만 통신사 사절이 “왜란이 남긴 부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3류 국가라 생각했던 일본의 실력을 생생히 확인”했던 것처럼, 저 역시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자유롭지 못했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탐방의 기간 동안 일본이라는 국가의 영향력과 실력을 눈으로 확인하며 재정립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 역시 필요하지만, 한국의 자체적인 노력 역시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두 차례 일본 침략으로부터 갖게 된 아픈 상처를 우리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아픈 역사를 겪은 사람들을 우리 안에서 돌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국에는 “우리는 이제 아픔의 역사로부터 자유롭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