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를 잇는 평화와 번영의 이정표, ‘新조선통신사’
내가 자란 목포는 1897년 개항된 이래 식민지 거점도시, 대표적인 항구도시였던 곳으로 구 목포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동본원사 목포 별원, 목포 공립심상 소학교 등 아직까지도 많은 일본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역사, 그 중에서도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왜 식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현재와 미래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나 양국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기에 얽혀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아직도 명쾌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를 통해 직접 보고 들으며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했다. 과거 조선통신사는 정치·외교적으로 대등외교의 수립을 나타냄과 동시에 학술·사상·예술과 같은 문화교류의 역할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저는 양국의 약 200년간 평화유지에 기여한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소통을 만들어냈던 선조들의 발자취를 직접 경험하며 양국의 얽혀있는 문제에 접근하는 다각적인 시각을 기르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에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기 전, 급속도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악화된 관계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근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럴 때 일수록 평화를 이끌어낸 조선통신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오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탐방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쇼코쿠지 지쇼인과 고려미술관을 꼽을 것 같다. 쇼코쿠지 지쇼인은 벳슈 소엔 스님과의 인연이 있는 곳으로 그가 조선통신사와 시문을 주고 받았던 것이 ‘한객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더불어 지쇼인이 방안에는 병풍을 된 또 다른 자료가 있는데 다양한 모양의 형태의 글과 그림이 모여져 있어서 신기했다. 언어가 다르지만 글과 그림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나눴던 것과 꽃무늬, 하트무늬등 다양한 모양의 종이에 각기 다른 글귀가 적혀져 있어 세심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미술관은 제일교포인 정소문씨가 건립한 곳으로 예능 프로그램인 ‘선을 넘는 녀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정소문씨는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내게는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며, 언젠가 조국에 돌아갈 때 선물을 준비하고자 자료관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더불어 통일이 되기 전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며 통일이 된다면 미술관을 기증하겠다고 했으나, 아직도 일본 교토에 남겨져있다. 이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관계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과거 선린외교를 통해 나라의 안정과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낸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의 한일관계를 적대적 관계에서 함께 번영으로 나아가는 동반자라는 인식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닫힌 마음을 열려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만들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
손승철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제 5회 신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다양한 유적들과 유물을 통해 역사에 대한 증언을 듣고 왔다. 두 국가 간의 관계가 위태로운 지금이야말로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두 국가 간의 평화와 신뢰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서로 물어뜯는 관계가 아닌 서로 돕고 이해하는 공생관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