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저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자녀로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 명절인 오봉 때 외갓집을 가고 취미인 축구를 좋아하면서 일본을 20번 넘게 갔다 왔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일본 자체를 즐기러 갔을 뿐 그곳이 한국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일문화교류기금에서 주최하는 한일문화강좌를 들었습니다. 조선통신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신기수 선생의 딸이 아버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교적 사료를 찾기 어려웠던 1979년에 한양부터 에도까지 조선통신사의 경로를 이렇게 상세히 밝힌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와 동시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대학생 신조선통신사를 보고 든 느낌은 단 하나입니다. “아, 내가 갈 길이다”
8박 9일의 긴 여정을 시작하면서 저는 이 여행이 자칫 한국 고유의 시각에서 일본을 보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조선통신사를 영접한 아메노모리 호슈가 강조했던 성신지교처럼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을 갖기 위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배웠습니다. 물론 저도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학우들에게 이를 설명했지만,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5명의 학우 모두가 절, 신궁, 기념관, 박물관 관계자들의 설명을 경청하면서 조선통신사가 남긴 발자취를 몸에 익힌 것을 보고 그 마지막 퍼즐이 채워졌습니다. 낯선 이국땅 먼 길을 떠난 조선통신사도 불구대천 원수의 땅,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서로를 배워간다는 느낌으로 마음속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먼 훗날 이 길을 따라나선 후배들을 본다면 아마 충분히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조선통신사들은 일본 각지에서 한시나 그림을 주고받으며 문화 교류를 했습니다. 저희도 짧은 시간 간사이대학과의 교류회를 통해 한일 양국의 문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잔을 채워주는 것에서 시작해 한일 공통의 문제를 의논하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화면 속 미디어에서는 한없이 높게 느껴졌던 장벽이 여기에서는 마치 울타리처럼 가볍게 보였습니다. 한정된 짧은 시간이 정말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여행 중 만난 일본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습니다. 각지의 관계자들은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은 저희를 위해 쉽게 설명했고, 급하게 통역을 맡은 학우를 위해 긴장을 풀어주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심지어 휴일임에도 저희를 위해 나와서 설명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조선통신사가 간직했던 성신지교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저도 개인적인 일본 여행 중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극진히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에서 봤던 모습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나라의 명을 받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선조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결국 최종 목적지인 에도성에 도착, 국서를 전달해 답장을 받았고 저희 또한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에 도착해 수료증을 받으며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군대 시절 열심히 들었던 '연결고리'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4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연결고리는 조선통신사였고 이것은 양국의 소리로 널리 울려 퍼졌습니다. 이 연결고리를 이어서 지금까지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지금은 두 나라 관계가 어렵지만, 조상들이 물려준 이 연결고리를 잃지 않고 평화의 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