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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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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불편한 내막, 그리고 실리외교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는 문화사절단조선통신사. 조선 통신사는 단순히 한류의 원조이자 문화의 사절단인가? 결론만 말하자면, 조선 통신사는 단순한 문화사절이라는 단어를 넘어선 실리주의 외교관들이다. 나는 지난 89일간 알게 된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던 조선통신사의 진실과 실리외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한다.

 

나는 여행의 시작 전, 조선통신사 파견의 성사로부터 양국이 서로에게 화해를 청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사실 조선통신사가 파견된 내막을 알고 나니 김이 빠졌다. 당시 상황에서 둘의 화해가 성사된 것은, 다름 아니라 국서위조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국서를 위조한 것은 쓰시마 번주였다. 쓰시마 번은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 거래로 먹고 사는 곳이었다. 두 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자 번의 경제적 상황 또한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에 번주는 꾀를 내어 조선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을 담아 도쿠가와의 옥새 서체 연호까지 위조해 조선에 전한다. 조선왕조도 의심하지만, 결국 문제 삼지 않고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한다. 쓰시마 번주는 선조의 답장을 도쿠가와가 받게 되면 가짜 국서를 보냈다는 것이 들통 나 버릴 것이므로 완전 범죄를 꿈꾸며 답장 중 일부 문구를 바꾸어 위조문서를 도쿠가와에게 전하기까지 한다.

 

어쨌거나, 비록 국서 위조라는 요즘은 먹히지 않을 화해의 성립 배경에는 조선과 일본의 실리적 판단과 계산이 있었다는 정리가 가능하다. 쓰시마 번주도 경제적으로 곤란하였으며 조선도 청이 세력을 키우는 와중에 양쪽에서 세력싸움의 샌드위치가 되지 않기 위해 일본과 화해가 필요했으며, 그렇기에 쓰시마 번주가 보낸 위조 국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답신을 보냈던 것이다. 일본 또한 나중에 쓰시마 번주의 위조를 눈치 채지만,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오히려 위조를 밀고한 쓰시마 번의 중신을 죽여버린다.

 

또한, 나는 이번 여정에서 통신사가 일본에서 겪은 정치적 수모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1624년 다이부쓰지를 방문한 사행의 부사 강홍중은, 근처에 봉분같은 것을 보고 마을 사람에게 무엇이냐 물었다. 그 봉분은 사실 임진왜란 때 죽은 조선 사람의 귀와 코가 묻힌 미미즈카였다. 요즘으로 따지면, 한국의 대사를 막부가 일부러 야스쿠니 신사 주변 숙소에 묵게끔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외에도 막부가 통신사가 닛코를 방문할 것을 권유한 일도 있다. 조선통신사의 임무는 원래 에도에서 쇼군에게 국서를 전달하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통신사는 힘든 여정을 연장하면서까지 막부의 간곡한 요청 때문에 닛코를 방문한다. 이는 에도막부가 닛코의 화려한 사당을 통신사에게 보여 세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통신사들이 사당을 들른 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막부의 권위를 높일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숨어있었다.

 

조선 통신사는 이러한 정치적 수모를 미련하고 비겁해서 참아냈던 것일까. 아니다. 조선 통신사가 수차례 파견을 통해 지켜내려 한 것은 조선의 평화이다. 조금 이용당하면 어떠한가. 본디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이야말로 외교이다. 통신사 사절단은 자신이 잘못하면 자칫 양국의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평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 아닐까. 물론 통신사는 왕을 대표한 사절을 기만했다며 조선으로 자리를 박차고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조금 비겁해 보이는 통신사 사절단을 탓할 수가 없었다. 통신사 덕분에 짧지 않은 시간인 약 200년동안, 양국의 무역은 활발하고 번성하였으며, 양국은 평안한 시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런 통신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서 자존심보다 실리를 지키고자 한 500명의 외교관들이 보였다.

 

전쟁은 곧 외교의 실패이며, 외교의 실패는 곧 전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교의 실패로 인해 일본과 경제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있다. 현재 외교 상황은 조선통신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자존심보다는 실리라는 실리외교의 교훈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양국은 서로의 자존심만 세우며 경제보복이라는 카드를 꺼내어 서로를 압박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핵심 부품을 구하려고 일본을 뛰어다니고 있는데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에 관해 일본 국력이 한국보다 위지만,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 지금의 외교에 국민과 경제가 설 자리가 어디에 있는가. 외교가 실패하면 국민이 힘들고, 경제가 위태로워진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지금, 조선통신사의 실리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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