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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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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위안부, 일제 강점기 등 가슴 아픈 역사가 먼저 떠오른다. 그 시절 선조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나에게 있어서 애증의 나라인 일본에 1636년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이어받아 '대학생 조선통신사'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출발 당시 나의 역사적 배경지식은 거의 없었고, ‘조선통신사에 관해선 역사 교과서에 나올 법한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처음엔 부족한 배경지식이 부끄럽고 잘 이해해나갈 수 있을지 두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러한 상태에서 역사를 접하니 마음 편하게 가슴으로 공감하고 아파하며, 공경심과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로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정을 다니면서 가슴 아픔 역사를 마주했고, 슬픔을 조금이나마 덮어줄 따뜻한 역사도 알아갔다. 귀무덤, 그리고 그 옆에 지어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 웅장하고 정돈된 신사와 반대로 귀무덤은 들어가는 입구는커녕 도로변에, 구조상 신사의 아래쪽 위치해있었다. 영문도 모른채 하나뿐인 삶을 억울하게 잃고, 온전한 신체마저도 존중받지 못한 옛 선조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고, 이러한 비극을 만든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많은 희생을 치뤘는지, 허무하고 허탈했다.

하지만 조선통신사의 여정은 이러한 나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줬다. 조선통신사가 거쳐 간 수많은 일본의 마을들. 거기서 만난 따뜻한 인정(人情)에 나는 감동을 넘어서 존경스러웠다. 한 예로 시모카마리 섬에 있는 고치소이치방칸. 12번의 통신사 행렬 중 11번이나 방문했던 곳으로, 조선통신사가 방문하면 국3개와 반찬 15개로 한 상을 차려주었고, 한끼 식사 예산은 100억 정도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해주는 그들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또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선생님의 가르침역시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당대 일본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문화 상대적인 태도로 조선의 독자적인 문화와 풍습을 인정해주었다. 서로 배울 점은 배우되, 다른 부분은 틀린 부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분임을 이해하는 호슈 선생님의 생각에 큰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과거의 감동도 있었지만 간사이 대학교 학생들과 교류회를 진행하면서 현시대의 감동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각 국의 언어에 미숙한 우리지만, 어느 한명 불편함을 토로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짧은 일본어, 짧은 한국어, 몸짓과 손짓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이때 깨달았다. 우리가 이렇게 소통할 수 있었던건 서로 믿고 배려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론 영원히 풀 수 없을 것이다. 조선통신사의 기록물들이 한국과 일본의 노력으로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은 과거에 얽매인 분쟁(紛爭)의 관계에서 벗어나 공생(共生)의 관계로 나아가야한다. 이를 위해선 과거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더불어 서로를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는성신(誠信)의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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