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떠나기 며칠 전, 우리는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마주하였다. 긴장한 나머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였지만, 우리들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신조선 통신사로서의 시간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난다는 작은 두근거림도 함께였을 것이다. 출국 날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원들과 연락처를 나눠 갖고 소소하게 자기소개를 나누며 집에 돌아온 그때, 아마 그날부터 우리의 신조선 통신사의 여정은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전 조선시대의 통신사는 교류를 위해 일본으로 먼 길을 떠났다. 당시 그들이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지도해주시던 손승철 교수님께서는 관계란 어느 한 쪽이 열심히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1대 99인 상태로는 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 상대와 관계를 맺으려면 50대 50, 더 나아가 내가 49를 갖고 상대방이 51을 갖도록 해야 한다.”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탐방 중 만나게 된 많은 인연들과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우리뿐만 아니라 선조들도 그랬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짧은 9일간의 일정에도 감사한 인연을 많이 만났는데, 2년에 걸친 길을 왔다 갔다 한 선조들은 오죽했을까. 선조들에게 당시 일본 외교관이었던 아메노모리 호슈란 인물은 먼 이국땅에서 만난 진실 된 친구였을 것이다. 길면 긴, 짧다면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젠 다시는 보지 못할 친구를 남겨두고 고국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선조들은 그동안 함께했던 아메노모리 호슈에게 우정의 증표로 모자를 주고 떠난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그 모자를 소중히 간직하였고, 그가 소중히 간직한 모자는 아메노모리 호슈의 초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 중 많은 사찰과 신사, 박물관에 들렀고, 또 그곳의 계신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한발 나아가 우리가 문화재와 역사에 궁금한 점이 생길 때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친절히 답변해주셨다. 여느 때와 같이 조선통신사의 행적을 따라 이동하던 우리는 선조들이 남긴 시문을 보관하고 있는 한 신사에 들렀다. 그날 시문을 보고 작은 궁금증이 생겼던 나는 신사를 관리하던 분께 질문하였다.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던 대화는 그분과 나의 사이를 오가며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해주었다. 신사의 관리자였던 그분은 한국 학생들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공동의 역사에 이렇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하시며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짧은 시간, 정말 잠시 동안 들렸던 신사였지만 그 잠깐의 찰나 동안 나눴던 대화는 서로의 진심이 오가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소한 만남도 소중히 여기고 서로의 진심이 통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선통신사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한양에서 에도 성까지 이르는 먼 길을 떠났다. 어쩌면 통신사가 걷는 길은 무수히 많은 인연과 관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본적으로 통신사의 가장 큰 목적은 새로운 쇼군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하여 에도까지 길고도 긴 행차를 하였던 것이다. 적으면 300명, 많으면 500명에 가까운 인원이 2년에 걸쳐 움직이려면 수많은 사람의 배려와 마음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기나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도, 여행 중 찾아온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도 통신사를 반겨주던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떠난 답사라 처음에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현지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한 분 한 분을 만나는 동안에는 사람 대 사람으로 느낀 그 따뜻함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파견되던 통신사와 현지인들의 관계가 21세기에도 아직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은 인연들을, 관계를 앞으로도 소중히 하고 싶다.
현지에서 만난 분들뿐만 아니라 이번 답사 동안 함께 했던 신조선 통신사분들과의 관계도, 옆에서 챙겨주시고 신경 써주신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아메노모리 호슈처럼 나도 따뜻한 인연으로 간직하고 싶다.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조선일보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