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를 따라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대학생 新조선통신사의 탐방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선통신사에 관련한 나의 역사적 지식은 중, 고등 교과과정에서 배운 단편적인 지식뿐이 없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조선일보에서 올려주신 여러 기사와 자료들을 접했지만 비전공자이자 성인이 된 이후 역사에 대해 공부했던 것은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을 치렀을 때뿐이었던 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그리고 유적과 유물에 대해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후쿠야마, 오사카, 교토, 비와호, 나가하마, 다가츠키, 시즈오카, 하코네, 도쿄까지 이어지는 이번 2018 대학생 新조선통신사의 길에서 처음으로 나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를 증언하는 유물과 유적을 직접 보고, 들으며 머리로만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도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원통]
‘원통하다’라는 말과 표현을 평소에 잘 쓰지 않지만 이러한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왜란이후 쇄환과 정탐을 목적으로 다시 시작 했던 통신사를 출발하는 1607년의 조선의 관료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수십만 명이 죽고 조선 전역이 불타고 자신의 가족, 친지, 지인들도 피해를 입었을 전란의 원흉인 일본으로 자신이 외교 사절로 가게 되었을 때의 첫 감정은 ‘원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토내해로 들어가는 고치소이치반칸에서 바라본 바다. 고치소이치반칸에서 통신사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된다.
[시작]
시모노세키를 지나 시모카마가리에 왔을 때의 느꼈던 감정은 ‘시작’이었다. 여기에 위치한 고치소이치반칸은 좁은 일본의 세토내해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시작을 알리는 곳이었다.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곳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이 곳에서 정말 앞으로의 사나운 바다와 같은 물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일본과의 서로의 신의를 교류하는 ‘통신’을 하기위한 시작점으로 생각되었다.
[소통]
대학생 新조선통신사의 길을 걸으며 조선통신사가 지나왔던 길들을 답습할 때에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조선통신사의 시작에서부터 여정의 목적지였던 도쿄까지 모든 곳에서 교류가 이루어졌던 부분이다. 서로의 학문, 의학, 문학, 도예, 미술 등 사회 전반적인 거의 모든 부분에서 소통이 이루어졌고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구술로 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그 당시 공통으로 사용하던 한자를 이용하여 서로의 의견과 생각들을 주고받았다고 하는 점이 인상 깊었고 조선통신사라는 외교사절이 다만 국교를 정상화하고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공외교적인 사절이 아닌 정말 서로가 신의를 갖고 교류하며 서로 더 발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소통의 창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