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운 나라다. 전쟁과 침략의 역사는 당대의 한반도 주민과 현대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아픔이다. 수많은 양민이 학살당하고, 위안부로 동원되었으며, 강제노역으로 끌려간 아픔의 역사는 아직도 생생하게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가 전제되지 않는 한 일본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기 쉽지 않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서 일본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절망적인 때도 있었다.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일본이 참 미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조선통신사는 나에게 전환적인 역사 탐방이었다.
나는 임진왜란 직후에 통신사 파견이 재개된 것이 달갑지 않았다. 민족적 감정으로도 한반도를 불타는 땅으로 만든 장본인들을 다시 들어오게 한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오사카성을 둘러보며 권력이 교체되던 당시 일본사를 자세히 알게 되었고 새로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히데요시에서 이에야스로 권력이 교체되면서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웃나라 조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한편 조선은 히데요시 정권에 의해 큰 피해를 봤음에도 권력의 교체와는 상관없이 일본 그 자체를 증오했다. 조선의 관리들과 백성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의 출병을 거부했을 정도로 임진왜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조선을 향해 끊임없이 사신을 보내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조선의 입장에서도 일본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고,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는 것은 국제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불가피했다. 사대교린외교를 펼치는 게 조선반도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결국 사명대사를 탐적사로 임명하여 일본에 보냈고, 이후 점진적으로 통신사로 발전시켜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200년 넘게 평화로운 교린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통신사를 왜 보냈나’ 하는 의문이 정권교체라는 명분과 국제 관계라는 실리의 측면에서 대체로 이해되었던 오사카성 탐방이었다. 임진왜란이라는 껄끄러운 일이 있었음에도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는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정책이었다.
일제강점기 또한 일본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던 36년이었다. 무엇보다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치집단들이 미웠다. 그러나 현재 일본 정치인과 학자, 시민들 중에 한국에 대해 미안해하고 반성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고노,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는 한국인들의 한을 달래주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점을 보면서 일본을 증오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인식과 역사 왜곡에 대해,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시정을 요구할 것은 요구하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개선해야지 단순히 증오의 감정으로만 일본을 대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식이 아니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감정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미일 관계는 민족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제약조건일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우리의 운명이다.
에도로 들어가는 관문, 하코네세키쇼에서 신조선통신사 일원과 함꼐.
역사 공부의 목적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현재를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번 신조선통신사 역사 탐방을 통해 조선통신사가 거닐었던 길을 걸으며 과거 한일관계를 비추어 보고 그것을 탐구함으로써 현대 한일관계의 발전적 방안과 그 방향성을 배울 수 있었다. 한일 간 역사 인식을 공유하여 상호 이해를 높이고 교류 활성화와 양국 공동 발전이라는 통신사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정립할 때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