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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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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을 가르켜 종종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말을 쓰곤 한다. 같은 하늘을 일 수 없는,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미워하는 대상을 가르키는 말이다. 임진왜란으로 국토를 유린하고 인명을 도륙한 일본은 조선에게 있어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일본의 요청에 응하여 통신사를 보내어 국교를 재개하였고 양국은 200여년 동안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만들었다.

평화의 길은 근대에 들어서 일본이 제국주의의 노선을 택함에 따라 깨졌다. 일본은 한국을 병탄하여 식민지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한국이 입은 상처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해방이 되고 일본과 외교를 정상화한지 반세기가 넘어가지만 여전히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렇다면 과거의 조선과 일본은 어떻게 국교를 재개하고 관계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화해를 이끌었던 과거 통신사의 길을 쫓아감으로써 오늘날의 한일관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89일의 대학생 신조선통신사625일 부산에서 그 여정을 시작했다.

시모노세키에서 하선하여 도쿄까지 가는 동안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통신사가 받은 극진한 대접이었다. 오늘날의 국빈 대우를 훨씬 뛰어넘는 그들이 받은 환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통신사의 접대 비용은 막부의 1년 예산에 달했다고 하며, 막부의 다이묘가 받는 상차림보다 통신사의 그것이 융숭했다고 하니 그 처우는 가히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통신사가 남긴 글과 그림은 각 처소에서 귀중히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일본의 이와 같은 대접을 보며 그들이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이웃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일본의 절실함이 엿보이는 듯 하였다.

그러나 200여년 간의 모든 노력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통신사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시모노세키의 아카마 신궁 바로 옆에는 청일전쟁을 매듭지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체결 장소인 청일강화기념관이 있다. 청일전쟁을 통해 일본은 청나라를 제압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양국의 우호관계의 상징인 통신사의 거처와 일본의 한국 침탈의 전주곡인 청일전쟁의 사적이 같은 장소에 나란히 있는 것을 보자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지금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이웃 사이에서 대체 어디 쯤에 위치한 것인지 쉬이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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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 게시되어 있는 칠판. 한반도의 평화를 소원하는 예전 방문객들의 흔적과, 이제까지의 여정을 기념한 대학생 신조선통신사 대원들의 낙서가 인상적이었다.

 

 

89일의 여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조선통신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도쿄에 위치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바로 그 곳이었다. 평소에 재일한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일정에 추가된 자료관 방문은 깜짝 선물처럼 느껴졌다. 자료관을 방문하여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재일한인들이 겪었던 고난과 아픔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고 그들이 밟아온 삶의 궤적에 대해 반추해보았다. 방문의 만족도에 비례하여 나의 고민은 다시 깊어졌다. 어디서부터 한일관계는 어긋나게 되었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답은 우리가 지나온 여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에도 시대의 외교관으로 통신사들과 깊은 우정을 맺었던 아메노모리 호슈는 양국의 관계에 있어 성신지교의 정신, 즉 진실과 신뢰로 서로를 대할 것을 강조하였다. 탐방의 여섯 번째 날, 그의 고향에 세워진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을 방문하여 그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그가 직접 쓴 한국어 교재의 복사본을 받아간 날이었다. 이를 지참한 채 저녁에 선술집에서 우연히 일본인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통신사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통신사의 행적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그들에게 우리는 간단한 한국어를 가르쳐주었고 짧은 일본어와 번역기를 섞어 사용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고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그들을 보니 마치 수 세기전 통신사가 받았던 환대를 우리가 그대로 받는 듯 하였다. 헤어지기 전 기념으로 아메노모리 호슈의 책을 들고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일관계의 답을 300여년 전에 이미 호슈가 예측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진실과 신뢰, 이것이 오늘날에도 양국이 지향해야 할 이웃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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