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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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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린 (충남대 사학과)

 

조선통신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오죽하면 오사카성에서 만난 한국인 한 분이 조선통신사는 어떤 기관이냐고 물어봤을 정도일까.

 

 조선통신사는 조선전기부터 그 전통이 이어진 조선과 일본의 교류를 위한 사절단이다. 조선초기 왜구의 약탈이 빈번해지자 이를 해결하고 상호평화와 공존의 관계를 맺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조선통신사이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에도 지속된다. 임진왜란으로 양국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지만 조선은 외교적 실리를 추구하고 또 다른 전쟁을 피하기 위해 왜와의 교류를 다시 시행한다. 이 같은 교린관계는 19세기 일본이 일방적으로 일본 천황을 조선의 국왕보다 한 단계 위에 놓는 서계를 보내면서 끝이 나게 된다.

 

사료로 역사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유적과 유물을 통해 역사를 체험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조선통신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여정을 따라 걸으며 그들이 남긴 것들을 직접 보는 것은 잊혀져 가고 있는 조선통신사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통신사의 여정은 오사카, 도쿄와 같이 한국인들이 쉽게 갈 수 있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어촌마을도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그 발자취를 되짚어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실정이다. 또한 조선통신사 기록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관련 사료들이 매우 귀중해짐에 따라 여행자 신분의 개인이 방문하여 자료를 열람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번 3회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는 조선통신사에 대해서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는 정말로 소중한 기회였다.

 

 수많은 곳을 방문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장소였던 대마도이다. 대마도는 일본여정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대마도의 노력으로 인해 조선통신사가 시작 될 수 있었던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조선통신사 자체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주 작은 섬이지만 조선통신사를 파견했던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조선통신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축제나 대마도 번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는 통신사의 모습을 보았을 때 충분히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시모카마가리(下蒲刈)나 도모노우라()같은 작은 마을에서도 나타난다. 조선통신사를 어떻게 대접했는지, 그들이 이곳에 와서 어떤 문화적 유산을 남겼는지에 대해서 국내보다 자세히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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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조선통신사 행렬도 그림

 

 

한국은 점점 조선통신사를 잊어가고 있는데 일본은 이렇게 작은 어촌마을일지라도 이토록 조선통신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나는 과연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싶어하고, 어떤 역사를 잊으려 하였는가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역사를 선택적으로 기억하려 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통신사의 길을 따라 걸으며 했던 많은 반성을 통해서 앞으로 어떤 역사학자가 되어야 할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뜨거운 열정만 있다면 좋은 역사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뿐만 아니라 역사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연구하지 않기 위해 차가운 지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답사를 통해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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