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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윤민하(경희대학교 영어학부)

내 머릿속의 생각과 관념으로 편집된 사전이 있다면, 일본이라는 단어는 정의되지 않은 채 페이지 어딘가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굳이 물어왔을 때에는 한반도의 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나라, 그리고 우리에게 임진왜란과 위안부 문제라는 깊은 상처를 남긴 국가 정도로 평범한 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일본에 대해 이성적으로 무지했으며 감정적으로는 더욱 거리를 두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국민으로서 국가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반일 감정을 습득하긴 했다. 그러나 한·일 국가대항전을 볼 때나 감정적인 사람이 될 뿐,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일본이 지기를 바랐던 괜한 마음도 곧 사그라졌다. 역사를 공부하며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일시적인 감상에 그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일본 브랜드를 애용했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았고 일본 국적을 가진 아이돌 멤버의 팬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반일감정에 동조하면서도 왜 일본을 싫어해야 하는지, 왜 대한민국에 이런 범국가적인 감정이 생겨났는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교과서를 읽으면서도 전란의 참상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리적,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본 문화나 언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적 탐구는 학자들의 몫인 것만 같았고, 전쟁과 전쟁이 남긴 문제들은 너무 민감한 영역으로 느껴져서 외면하고 싶었다. 학교에 많은 일본인 유학생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존재로만 여겼다. 직접 공부하거나 부딪혀보면서 일본에 대한 스스로의 주관을 세우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회피하고만 있었다.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를 이어주는 다리, 만제키바시에서 4조 조원들과.

이렇듯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지냈던 나였기 때문에 제3회 대학생 新조선통신사로서의 여정은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9박 10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수준 높고 열정적인 강의를 날마다 들었으며 통신사의 흔적이 생생히 묻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직접 보았고, 조선통신사를 기억하고 되새기고자 하는 일본 현지의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또 이 모든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전국 25개교에서 선발된 재능 넘치고 활기찬 또래 대학생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비유컨대 첫 답사 장소였던 쓰시마에서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발을 처음 담그는 아이처럼 웅크린 마음이었다면, 나리타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기다릴 때에는 그 욕조에 너무 푹 빠진 나머지 나오기 싫어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지금,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우며 앞으로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직접 보고 감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안부 합의 문제를 다룬 수많은 기사를 마주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지식과 지혜는 저 너머에 있었고 뚜렷한 상처들을 지켜보았지만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무력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 모른다는 이유로 민감하고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예전처럼 일본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모른다는 것은 내게 아직 배움의 영역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민감한 문제일수록 올바르게 접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정치적 함의가 얼마나 고차원적이고 한편으로 세부적인지를 이번 여정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원폭 돔. 화창한 날씨와 원폭돔이 보여주는 역사가 대비되는 듯 하다.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3승을 올린 일본의 투수 노모 히데오가 남긴 말이다. 2017년 12월 일본을 다녀오기 전의 나는 도전을 회피하던 한 명의 소시민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원대한 도전은 아니더라도 소시민을 벗어나려는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첫 걸음을 뗄 수 있게 해 준 제3회 대학생 新조선통신사 여정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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