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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신조선통신사

참가후기

하늘 끝을 향한 항해의 폐막식에서

 

천정민

 

 

# 출발

 

「로켓에 자리가 나면 일단 올라타라-에릭 슈미트」

  모든 출발 속에는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 불확실성의 존재는 출발의 존재를 완성시켜주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나의 청년 신조선통신사의 시작 역시도 그러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부터, 선발이 되어 기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업무 정리, 돌아와서 맞이하게 될 일들까지 고려하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 있어 곁에 남아 있었던 미정의 가능성들은 선택을 망설이게 하고 쉽게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던 것은 새로운 도전과 만나보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통신사들 역시 나와 같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랑을 맞이하여 불귀의 객이 되거나, 왜구를 만나 목숨을 잃는 등의 여러 사건 사고에 대한 걱정을 하며 조선통신사로 선발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승사록’을 저술한 원중거는 그의 저서에서 문득 하늘 끝을 살피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선통신사를 지원하게 되었다고 기술해두었다.

 

  아마, 이 글을 읽게되는 사람은 청년 신조선통신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도 함께 하늘 끝을 살피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새로운 도전과 만나보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오히려 출발을 완성시켜 주는 존재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우선 일본으로 가는 배에 승선하시기를 권해드린다.

 

 

# 책임

 

  성취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군가를 대신했다는 것이다. 기회는 한정적이고 이를 획득한 사람은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신조이다.

  나는 내가 얻은 기회를 순전히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운, 주변인들의 도움, 그 외의 다른 무수한 변수들이 작용해 산출된 결과라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보다 더 잘할 수도 있을 ‘누군가의 대신’으로서 내가 쥐게 된 이 기회를, 얻지 못한 누군가가 적어도 씁쓸하게 여기지는 않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을 고대의 잠언처럼 스스로 항상 되새기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청년 신조선통신사의 첫 일정이었던 부산역 소집에 가장 먼저 도착했었고, 주어진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혹자는 이러한 노력을 보고 쓸모없는 집착이라 평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성취감은 우수한 실적이나 뛰어난 결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과정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게는 이 하나하나의 행동이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였다. 일정이 끝나고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도 나의 입으로 나의 여행을 뛰어나게 잘 마쳤다고 평하는 것은 오만이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여정을 끝마친 후 나의 시선과 책임을 지켜내는데 최선을 다했고, 그것들은 무너지지 않았기에 스스로 후회가 남지는 않을 시간을 보냈다는 말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 낭만

 

  불안과 책임을 몸에 두른 채로 출발했지만 청년 신조선통신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내 세상을 깊이 살피기 위해서였다. 이는 내가 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학문인 철학과 법학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 해답은 일본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철학의 경우 그 이름부터 일본인 철학사 니시 아마네의 번역이며, 이성, 도덕, 의무와 같은 개념 용어 역시도 그의 번역임에 따라 학문에서 일본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고, 법학 역시도 대한민국 민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일본 민법이 조선민사령을 통하여 적용되었고, 대한민국의 법은 일본의 법을 상당부분 계수하였기에 그 일본의 영향력이 지대한 실정

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 일본은 내가 가지고 있는 탐구욕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목적지였고, 이번 청년 신조선통신사는 거시적으로는 한일관계를 위한 것이었지만 미시적으로는 이와 같은 내 목마름을 해갈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낭만’이라는 단어도 낭만주의를 뜻하는 Romanticism을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어로 번역하며 새 뜻이 더해진 것으로, 과거부터 존재했던 낭만의 원 뜻은 ‘제멋대로 하다’이다. 내게 있어 이번 여정 속에는 내가 수학해온 두 학문을 향한 감상과 막연한 동경의 해소와 청년 신조선통신사의 목적과는 한걸음 이격되어 있는 독자적인 내 멋대로의 목표를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기행은 낭만을 좇은 결과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유학이라는 꿈이 더욱 구체화되며 낭만보다는 현실이 대두되는 결론을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이와 같은 낭만에서의 현실로의 관점 변화는 예술사조의 흐름처럼 내게 더욱 풍요로운 인생의 아름다움을 가져올 변화의 시초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작별

 

「다음날, 장로가 선의와 주경을 보내어 대신 회사하면서 칠한 상자와 그림보에 싼 간본인 책 몇 부를 보내왔다. 그리고 특별히 구비이 한 바구니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공이 모친을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이것으로 감지를 도와 드립니다”하였다. 구비이는 모양이 흑당과 같은데 연하고 달고 깊은 맛이 있어 노인이 드시기에는 적당한 것이었다. 내가 다시 편지를 써서 감사의 뜻을 표시하니, 여러 중이 또한 각각 눈물을 닦으며 갔다.

-신유한, 해유록 중 12월 26일」

 

  아메노모리 호슈는 신유한에게 노모가 계시다는 것을 듣고 노모를 위하여 구비이(흑사탕)를 한바구니 보내왔다. 아마도 신유한은 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가족들과 함께 이를 나누며 그를 기억했을 것이다. 킨키대학교에서 마련한 교류회를 마치고 떠나는 순간에, 학생들로부터 사탕을 선물받았다. 출발하기 전 읽었던 책의 위 구절이 떠올랐고, 수백 년 전의 신유한과 아메노모리 호슈의 이별이 오버랩됐다.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이 이별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학생들과는 헤어졌지만, 사탕을 먹으며 그들을 추억했다. 역사는 반복되었고 떠나는 사람을 위하는 그들의 마음 역시도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비록 만남의 순간은 닳아 사라지고 말았지만, 인연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 달콤했던 기억과 순간은 반복되며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 폐막

 

「SAYONARA-1964년 도쿄올림픽 폐막식, ARIGATO – 2020년 도쿄올림픽 폐막식」

 

  배는 항구를 떠날 때는 성대한 출항식을 하지만, 여정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축제 역시도 폐막식보다는 개막식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화려하게 치장한다. 그러나 일체의 행위가 종료됨에 있어서의 그 의미와 여운은 시작에서의 잠재력과 설렘만큼이나 뜻깊은 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던 청년 신조선통신사는 귀항하여 막을 내렸지만, 당시의 느낌, 감정의 총체는 자국처럼 남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의 마지막 장면은 폐막식이 종료된 이후, 불 꺼진 경기장의 전광판에 SAYONARA라는 문구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이후 약 60년이 지난 2020년 도쿄올림픽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로 모든 폐막식이 끝나고 난 후, 고요히 ARIGATO라는 글자로 감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처럼 지금은 끝을 맞아 작별인사를 건네지만, 몇 십년이 흐른 후에도 이 순간과,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과, 청년 신조선통신사에 대한 감사함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어 이를 언제까지나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청년 신조선통신사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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